브론테

브론테

다른 표기 언어 Emily (Jane) Brontë
요약 테이블
출생 1818. 7. 30, 잉글랜드 요크셔 손턴
사망 1848. 12. 19, 요크셔 호어스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소설가·시인.
필명은 Ellis Bell.

브론테(Emily (Jane) Brontë)
브론테(Emily (Jane) Brontë)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1847) 단 1편만 남겼는데 요크셔의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브론테 집안의 3자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가였다고 여겨지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데다가 관심을 끌 만한 편지왕래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1편뿐인 소설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인이었으며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공부해 1806년 학위를 받았고, 6년 뒤 콘월 주 펜전스 출신의 마리아 브랜월과 결혼했다.

그는 여러 곳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던 까닭에 첫째딸 마리아와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요크셔 주의 하트셰드컴클리프턴에서 태어났고 샬럿, 패트릭 브랜월, 에밀리, 앤은 손턴 근처에서 태어났다. 1820년 아버지는 호어스의 교구사제가 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1821년 어머니가 죽은 뒤 브론테 자매들은 황량한 황야의 사제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 대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가 랭커셔의 카우언브리지에 있는 '성직자 딸들을 위한 학교'에서 보낸 한 해를 빼면 브론테 집안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 집에서만 교육을 받았다. 1835년 샬럿이 로헤드에 있는 미스 울러 학교에 교사 자리를 구하자 에밀리는 학생으로서 언니를 따라갔으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3개월 만에 돌아왔다. 1838년 에밀리 자신이 핼리팩스 근처 로힐에 있는 미스 패칫 학교에서 6개월 동안 교사일을 했으나 너무 힘들어 그만두었다.

가족들이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샬럿은 호어스에 여학교를 열 계획을 세웠다. 1842년 2월 샬럿과 에밀리는 에제 기숙학교에서 외국어와 학교운영을 배우기 위해 브뤼셀에 갔다. 에밀리는 집과 거친 황야를 매우 그리워했고, 내성적이기는 했지만 브뤼셀에서 샬럿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그녀의 열정적인 기질이 샬럿의 차분한 성격보다 더 쉽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월에 이모가 죽자 에밀리는 호어스로 아주 돌아왔다.

1845년 샬럿은 우연히 에밀리가 쓴 시를 몇 편 보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3자매가 모두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년 뒤 그들은 각자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로 시작되는 필명을 써서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함께 펴냈다. 이 시집에는 에밀리의 시 21편이 실렸는데, 후대의 비평가들은 한결같이 에밀리의 시만 진정한 시인으로서 재능을 엿보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이 책을 내는 데 3자매가 들인 비용은 50파운드나 되었는데 정작 팔린 것은 2권뿐이었다.

1847년 여름에는 런던의 출판업자 J. 코틀리 뉴바이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애그니스 그레이 Agnes Grey〉를 함께 출판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으나, 출판은 샬럿의 〈제인 에어 Jane Eyre〉가 발표될 때까지 미루어졌다.

〈제인 에어〉는 나오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폭풍의 언덕〉은 1847년 12월 출판되었을 당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너무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나중에야 영어로 씌어진 최고의 소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폭풍의 언덕〉을 출판한 뒤 곧 에밀리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점점 더 숨쉬기조차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다가 1848년 12월 결핵으로 숨졌다.

브론테에 대한 평가

〈폭풍의 언덕〉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탄탄한 상상력의 산물인 이 강렬한 소설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쳤을 가능성이 크다. 극적이며 시적인 묘사, 작가의 논평을 배제한 점, 비정상적인 구조 등은 이 작품이 당대의 다른 소설들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그 내용을 보면, 18세기말 요크셔의 외딴 곳에 살고 있던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히스클리프라는 부랑아가 몰고온 파문을, 짤막한 서술이 삽입된 제3자의 회상체로 그리고 있다.

히스클리프는 캐시 언쇼가 그에게 모욕적인 대우를 하고, 신사답고 돈 많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자 앙심을 품게 되는데 캐시는 히스클리프처럼 격정적인 성품을 갖고 있으며 그의 연인이었다. 히스클리프는 두 집안 모두에 복수하기로 결심하며, 이 복수는 2세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캐시가 아기를 낳다가 죽은 뒤에도 히스클리프는 그녀에 대한 애증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며, 죽을 때까지 그 망령에 시달린다. 결국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의 살아 남은 상속자들이 결혼함으로써 평화가 찾아온다.

에밀리는 다른 자매들이 지닌 냉담한 기질과 샬럿의 격정적인 상상력을 가졌지만 그들과 달리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들을 소설 속에 끌어들이지 않았으며, 노처녀나 여자 가정교사 신세에 대한 자격지심이라든가 우월감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곳을 배경으로 몇 안 되는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룬 에밀리의 작품은 사랑과 증오라는 심오하고 원초적인 에너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논리에 맞게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여기서는 샬럿이 즐겨 사용하는 우연의 일치와 낭만적인 비유나 그럴듯하게 꾸민 미사여구를 쓰지 않았다. 또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는 주제와 직접 관련된 것에만 한정되어 있다. 이 소설의 음산한 힘과 등장인물들이 드러내는 야만성 때문에 19세기 일부에서 잘못된 견해가 생겼다. 즉 이 작품의 남성적인 색채로 보아 오빠 브랜월이 일부나 전체를 썼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브랜월이 죽은 지 한참 뒤에 친구들의 회고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사소한 의혹들을 없애기는 어렵지만, 여기저기에서 증거라고 내놓은 그 어떤 것도 에밀리의 작품이라고 단호히 말한 샬럿의 주장을 반박할 만큼의 근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