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견

부견

다른 표기 언어 P'u Chien , 符堅
요약 테이블
출생 338
사망 385
국적 전진(前秦), 중국

요약 5호16국시대 전진(前秦:351~394)의 제3대 황제.
(병). Pu Jian. (웨). P'u Chien.

문옥(文玉)이라고도 한다. 자는 영고(永固). 저족(氐族) 출신으로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했으며, 한족(漢族) 문화에 대한 교양이 풍부했다. 처음에는 동해왕(東海王)에 봉해졌으나, 357년에 스스로 황제에 올라 대진천왕(大秦天王)이라 하고 연호를 영흥(永興:357~385)으로 바꾸었다. 재위중에 한족 정치가 왕맹(王猛)을 등용하여 관리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중용했다.

또한 학교를 널리 부흥시키고 유학을 제창하여 고관의 자제들에게 경학을 배우도록 했다. 태학(太學)에 나가 친히 학생들의 시험을 주관했으며, 관리에게는 경(經)이나 예(藝) 어느 한 가지라도 능통하지 못하면 파직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불법을 일삼는 귀족을 억압해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농업생산을 중시해 관중[關中] 지방에 관개시설을 만들었으며, 부·요역의 부담을 줄여 전진을 16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 전연(前燕)·전량(前凉)·대(代)를 차례로 정벌해 북방지역을 대부분 통일했으며, 서역(西域)으로 진군하고, 동진의 양주(梁州)·익주(益州)를 정복해 각 민족의 우두머리에게 융화정책을 썼다. 372년에 중 순도(順道)를 시켜 고구려에 불경과 불상을 보내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했다. 383년 그는 전진의 모든 국력을 모아 90만 명의 병력으로 동진을 공격해 중국을 통일하려고 했다. 그러나 페이수이[淝水] 전투에서 패배하자, 그 틈을 타 창족[羌族] 등 여러 민족들이 전진에 반기를 들고 독립했다. 385년 모용수(慕容垂)가 장안(長安)을 공격하자 부견이 도망치려 했으나, 창족의 우두머리 요장(姚萇)에게 포로가 되어 신평불사(新平佛寺)에서 교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