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자

보편자

다른 표기 언어 universal , 普遍者

요약 따라서 일반명사의 지시체에 속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존재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보편자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은 고대 그리스의 형상이론 또는 이데아론에 기원을 두고 있다. 플라톤은 형상 또는 이데아가 개별 대상들 속에 구현된 것과 다른 실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형상과 신의 정신 속의 원형을 동일시한 아우구스티누스와 로마 후기 학자인 보에티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한편 후대의 철학자들은 존재론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편과 논리학과 언어분석에만 관심을 갖는 편으로 나누어졌고, 이들은 보편자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을 그만두고 스콜라 학자들이 거의 탐구하지 않은 인식론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오늘날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개념론, 명목론은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주장되고 있다.

따라서 일반명사의 지시체에 속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존재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보편자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은 고대 그리스의 형상이론 또는 이데아론에 기원을 두고 있다. 플라톤은 형상 또는 이데아가 개별 대상들 속에 구현된 것과는 다른 실재적 존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상적 아름다움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들 속에 불완전하나마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보다는 덜 적극적이었다. 그는 형상 또는 보편자는 개별자들 '속에서'만 존재하고 분별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실재한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실재론자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후대의 철학자들은 이 차이점을 플라톤에게는 '사물에 앞선 보편자'(universalia ante rem), 아리스토텔레스에는 '사물 속에 있는 보편자'(universalia in re)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중세 그리스도교 스콜라 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플라톤의 형상과 신의 정신 속의 원형을 동일시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후기 학자인 보에티우스가 포르피리오스의 〈입문 Isagoge〉에 관한 주석서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말에 영향을 받았다.

"유와 종은 실체인가 아니면 정신 속에만 있는 것인가, 물질적 실체인가 아니면 비물질적 실체인가, 감관으로 지각하는 사물들과는 별개의 것인가 아니면 이 사물들 속에 있는가."

위(僞)디오니소스,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 안셀무스, 기욤 드 샹포, 질베르 드 라 포레 등은 플라톤-아우구스티누스의 극단적 실재론을 받아들였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온건 실재론을 받아들였다(→ 스콜라 철학).

중세에 실재론을 반대한 사람은 소수파였다. 소수파는 보편자에게 정신개념으로서만 존재를 부여했다.

이렇게 개념론적인 주장을 편 사람은 로슬랭·아벨라르·오컴(William of Ockham) 등이었다. 그러나 로슬랭과 오컴이 너무도 비타협적이었기 때문에 반대자들은 그들의 개념론을 명목론(보편자는 편의상 서로 비슷한 것에 자의적으로 붙인 단어나 이름일 뿐이라는 이론)과 동일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중세에 명목론자가 있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극단적 명목론은 유사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유물론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사고와 언어 사이의 밀접한 연관을 바탕으로 온건 명목론을 옹호했다. 후대의 철학자들은 존재론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편과 논리학과 언어분석에만 관심을 갖는 편으로 나누어졌고, 이들은 보편자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을 그만두고 스콜라 학자들이 거의 탐구하지 않은 인식론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오늘날에도 이 4가지 견해, 즉 플라톤의 견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개념론, 명목론은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주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