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

히에로니무스 보스

다른 표기 언어 보스 , Hiëronymus Bosch 동의어 히에로니무스 아켄, Hieronymus van Aken, 엘보스코, El Bosco
요약 테이블
출생 1450년경, 네덜란드 브라반트(부아르뒤크) 스헤르토헨보스
사망 1516년 8월 9일, 스헤르토헨보스
국적 네덜란드

요약 15~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쾌락의 동산>과 <7가지 큰 죄>와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용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초기에는 구도가 서툴고 붓놀림도 일정하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숙기에 이르러서는 공간을 환상적으로 혹은 원근법적으로 묘사하여 도상학의 독창성을 이루었다. 주로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용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종교적 주제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악에 이끌려 타락하는 인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이로 인해 난해하다고 여기는 비평가들도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작품에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보스(Hiëronymus Bosch)
보스(Hiëronymus Bosch)

중세 후기의 뛰어난 독창적 화가로 복잡하고 개성적인 양식의 특이한 도상학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악마의 창조자'이자 풍자적이면서도 그럴 듯한 넌센스를 많이 꾸며내는 화가로 알려졌지만, 정신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으며 생명과 창조에 대한 상징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비관주의자이자 엄격한 도덕주의자로서, 인간 본연의 이성에 대해 어떤 기대도 가지지 않았으며, 인간의 존재로 인해 타락한 이 세상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의 그림들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용의 그림이 많아 종종 해석하기가 어렵다. 작품의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없었던 초기의 비평가들은 그가 비밀종파에 가입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종교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속세의 악에 이끌려 결국 타락하는 인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형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난해한 미술가로 생각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지닌 재능있는 화가이자 작품에 추상적인 개념들을 표현한 최초의 미술가로서 평가하고 있다. 최근에 그의 작품에 관해 철저한 해석들이 많이 나왔지만, 세부에 관해서는 아직 모호한 것들이 적잖이 남아 있다.

총35~40점의 그림이 그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중 7점만이 서명되어 있는데 그것도 연대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제작시기는 불분명하다.

그의 부친과 조부도 화가였다는 사실 이외에는 초기 생애에 관해 기록된 자료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태어난 도시에 있는 '성모 마리아 형제회'(Illustre Lieve-Vrouwe Broederschap)의 기록부에, 1486년부터 그가 죽은 해(그해에 '뛰어난 화가'라는 찬사를 받음)까지의 문서들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림 외에도 그는 장식품과 제단장식,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의 디자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구도가 서툴고 붓놀림이 일정하게 한정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바보의 치료 The Cure of Folly〉(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Crucifixion〉(브뤼셀 왕립미술관)·〈동방박사들의 경배 The Adoration of the Magi〉(필라델피아 존슨 컬렉션)·〈7가지 큰 죄 The seven Deadly Sins〉(프라도 미술관)·〈가나의 혼인 잔치 The Marriage at Cana〉(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Ecce Homo〉(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립미술학교)·〈마법사 The Conjurer〉(파리 근처 생제르메낭레 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바보의 치료(The Cure of Folly)
바보의 치료(The Cure of Folly)

중기의 세련된 작품에 보이는 몇 가지 모티프와 서툴지만 대담한 기법에서 그의 예술적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최초의 것인 〈바보의 치료〉에서 마지막 작품인 〈마법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한 결과, 후자의 도상학은 더욱 복잡하고 암시적인 주제로서 후기의 뛰어난 걸작들에 보이는 상징성을 예시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회화적인 발전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의 그림들은 15세기초의 전통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거장 플레말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7가지 큰 죄〉에서 그는 탁자 위에 최후의 4가지 것들(죽음, 최후의 심판, 천국, 지옥)이 들어 있는 4개의 작은 원을 그린 후 그 옆에 커다란 원을 하나 그리고 칸을 나누어 여기에 각자의 부도덕(질투·게으름·분노·허영심·욕정·탐욕·탐식 등)에 빠져 있는 당대의 일반적인 사람들을 그려넣었다.

7가지 큰 죄(The seven Deadly Sins)
7가지 큰 죄(The seven Deadly Sins)

홍채(虹彩) 모양의 넓은 금띠로 둘러싸인 눈동자가 들어 있는 큰 원의 한가운데에는 부활한 그리스도가 "조심하라, 조심하라, 하느님이 그대를 보고 있도다"(Cave, cave, Deus videt)라는 비문을 그려넣었다. 원형은 세계를 상징하며, 7가지 죄가 그려져 있는 3개의 원은 하느님의 눈을, 눈동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모든 상징들은 뒤에 더욱 폭넓은 의미를 띠게 된다.

〈건초 수레 Hay Wain〉(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he Temptation of St. Anthony〉(리스본 국립고대미술관)·〈쾌락의 동산 Garden of Earthly Delights〉(프라도 미술관)과 같은 뛰어난 패널화들은 많은 작품들을 남긴 중기에 그려졌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The Temptation of St. Anthony)

이 야심적이고 매우 복잡한 구도의 작품들에서는 인물의 모습이 우아하고 색채는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모든 것이 동작을 갖고 있다. 자연의 법칙은 무너지고, 식물세계와 동물세계, 산 것과 죽은 것,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진실한 것과 그릇된 것 등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신이 없는 대혼란의 끔찍한 상태를 어렴풋이 보여주는 듯하다.

이무렵 그는 초기의 생각들을 더욱 발전시켰는데, 현존하는 몇 점의 그림들은 그 사고의 전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건초 수레〉에서는 환상과 냉혹한 현실이 더욱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데, 이 작품의 바깥 날개, 즉 덮개 패널은 〈7가지 큰 죄〉의 장면들을 생각나게 한다. 여기에 사용한 곡선적 양식은 수채화와 비슷하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건초더미에서 각자 자기 능력만큼의 건초를 가져간다"는 플랑드르의 속담을 묘사한 중앙 패널에서는, 왼쪽 덮개에 그려진 지상 천국에서 오른쪽에 있는 공포의 지옥으로 사람들의 행렬을 이끄는 악마의 계략을 보여주고 있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은 양식적인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붓을 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다루어 날카롭고 간결하게 사용했으며 구도는 더욱 유연해지고 공간은 점점 더 환상적 또는 원근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물의 모습은 우아하고, 색채는 은은하면서도 선명하다. 붓끝을 잘 다루어 윤곽선과 움직임에도 미묘한 뉘앙스를 주는 데 정통하다는 것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의 개성적인 도상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에서 악마의 편재와 유혹에 대항하는 인간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성자는 인간의 영웅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안토니우스는 한가운데에 그려져 있다. 그를 중심으로 주변에 대칭을 이루며 혼란스러운 동요가 집중되어 있다. 작은 예배당에서 안토니우스에게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 인물은 그리스도이며, 벽 가까이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마법사(또는 악마)를 나타낸다. 보스가 영감을 얻기 위해 연금술을 사용한 것은 중세에 그것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결과인 것 같다.

사탄이 인간을 속여 그의 구원을 앗아간다는 주제는 점점 발전하여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에서는 함축적 의미를 띠며 이단과 그릇된 교리의 유혹을 심원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성숙한 시기의 대표적 작품인 〈쾌락의 동산〉은 여자의 창조, 최초의 유혹, 그리고 타락으로 이어지는 세속적 낙원을 보여주고 있다. 쾌락을 쫓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꿈과 육욕을 아름답고 어지럽게 묘사하고 있는 이 그림은 그의 도상학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시기의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환영적이고 꿈 같은 분위기로서 무게 없는 유령들이 멀리 떨어진 풍경 속에서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며,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완벽하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규모가 크게 달라졌으며, 수백 명의 소인들이 사는 초원이나 지옥 같은 풍경 대신에 화면에 꼭 맞게 들어차는 반신상들을 빽빽이 그렸다. 〈가시면류관을 씌움 The Crowning with Thorns〉(런던 국립미술관과 마드리드 근처의 엘에스코리알에 모사품들이 있음)과 〈십자가를 지고 감 Carrying of the Cross〉(헨트 미술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이 극적인 클로즈업은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사된 사건에 가까이 있어 실제로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듯 느끼게 한다.

인물들은 때로는 다층적인 상징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가시면류관을 씌움〉에서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는 이 4명의 사형집행인들은 인생의 4단계, 4가지 기질, 또는 인간 잔인성의 4가지 다양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보스는 작품에서 대체로 세상의 악들을 묘사하는 데 몰두했으며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세상은 거의 상상하지도 않았다. 색의 조화를 이루거나 심오한 구도를 창조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모방자들이 그의 양식을 도용하려 했지만, 그 누구도 그 독특함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