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마르셰

보마르셰

다른 표기 언어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요약 테이블
출생 1732. 1. 24, 프랑스 파리
사망 1799. 5. 18,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오페라로 잘 알려진 뛰어난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1775)·〈피가로의 결혼〉(1784)을 썼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가 지은 인기 있는 오페라의 기초가 되었으며,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같은 이름의 오페라에 영감을 주었다. 보마르셰의 생애는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다툼과 모험·음모의 드라마이다.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시계 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고르게 하는 장치를 발명했는데, 이 장치의 특허문제로 소송사건에 휘말렸다. 이 소송에서 변론하기 위해 쓴 글이 명성을 얻으면서 희곡을 쓰게 되었다. 약삭빠른 하인이라는 전형을 보마르셰가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이런 인물 유형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희극에 등장했음), 그의 두 희곡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피가로는 이런 유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지금도 참신함을 유지하고 있는 2편의 뛰어난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 Le Barbier de Séville〉(1775)·〈피가로의 결혼 Le Mariage de Figaro〉(1784)을 썼다.

약삭빠른 하인이라는 전형을 보마르셰가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이런 인물 유형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희극에 등장했음), 그의 두 희곡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피가로는 이런 유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보마르셰는 분명 계급의식적인 공감을 가지고 하인의 재치와 교활함을 묘사했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가 지은 인기 있는 오페라의 기초가 되었으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에 영감을 준 2번째 희곡은 귀족의 특권을 공공연히 비난함으로써 1789년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회적 격변을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었다.

보마르셰의 생애는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다툼과 모험·음모의 드라마이다.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시계 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고르게 하는 장치인 탈진기(脫進機)를 발명했는데, 이 장치의 특허문제로 소송사건에 휘말렸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하여 그후에도 여러 번 소송이 벌어졌다. 그는 이런 소송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재치가 번뜩이는 일련의 훌륭한 반론들(〈회고록 Mémoires〉)을 썼는데, 비록 법정에서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 반론으로 명성을 얻었다.

1773년부터 그는 법적인 문제 때문에 프랑스를 떠나 루이 15세와 루이 16세의 밀명을 띠고 영국과 독일을 돌아다녔다. 극작가로서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지만 그는 축재에 몰두하여 미국 독립전쟁을 위해 무기를 팔았고, 볼테르의 작품을 처음으로 완간했다. 그의 희곡 작품 중에서는 2편의 고전적 희극만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부유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때 감옥에 갇혔지만(1792) 옛 애인의 개입으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