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

다른 표기 언어 Jöns Jacob Berzelius
요약 테이블
출생 1779. 8. 20, 스웨덴 린최핑 근처
사망 1848. 8. 7, 스톡홀름
국적 스웨덴

요약 스웨덴의 화학자. 근대 화학의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1807년경 화합물의 조성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하여 10년에 걸쳐 약 2,000여 화합물을 조사한 끝에 산소의 원자량을 기초로 다른 원소들의 원자량을 결정했으며, 세륨(1803)·셀레늄(1817) 등의 원소를 발견했고, 규소(1823)와 같은 원소를 분리했다. 물중탕, 데시케이터, 거름종이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두드러진 업적으로는 원자량 결정, 근대 화학기호의 개발, 전기화학이론, 몇 가지 원소들의 발견과 분리, 고전적 분석법의 개발, 이성질과 촉매작용에 대한 연구가 있고, '이성질', '촉매작용' 등의 용어를 만들었다.

스웨덴의 화학자. 근대 화학의 창립자 중 한 사람으로서 두드러진 업적으로는 원자량 결정, 근대 화학기호의 개발, 전기화학이론, 몇 가지 원소들의 발견과 분리, 고전적 분석법의 개발, 이성질(異性質)과 촉매작용에 대한 연구가 있다. 이성질과 촉매작용은 둘 다 그가 붙인 명칭이다. 엄격한 경험주의자였고, 모든 새 이론은 전체적인 화학지식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린시절에 화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물리학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웁살라대학교에서의 의학공부 성적은 거의 형편없었으나 1802년 의사자격을 획득했으며, 스톡홀름에서 의학·식물학·약학 조교수가 되었다. 1807년에는 정교수가 되었고, 다음 해에 스톡홀름 왕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어 1818년 종신간사가 되었다. 1815~32년에는 스톡홀름의 왕립 카롤리네 내외과연구소의 화학교수로 있었고, 1835년 찰스 14세로부터 남작작위를 받았다.

1807년경 화합물의 조성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아껴서 빈약한 실험설비들과 그 자신이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개발한 기법으로 실험하면서, 10년에 걸쳐 약 2,000여 화합물을 조사했다. 산소의 원자량을 기초로 다른 원소들의 원자량을 결정했으며, 이를 계산하는 근거 이론으로서 배수비례의 법칙, 원자론, 동형(同型) 원리들과 부피와 관련있는 게이 뤼삭의 법칙을 따랐다.

배수비례와 원자량에 대한 결과를 표로 만들어 1818년에 출판했으며, 1826년에 개정되었으나 상당히 정확했다. 그동안 그는 여러 가지 용액들을 전기분해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 연구는 전기적으로 양성(陽性)인 원자와 음성(陰性)인 원자가 결합하여 화합물이 만들어진다는 전기화학적 이원론으로 발전했다. 자신의 가설이 무기화합물뿐만 아니라 유기화합물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하려는 시도를 통해 라디칼 이론의 기초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그는 세륨(1803)·셀레늄(1817)·토륨(1828) 원소를 발견했으며, 또한 규소(1823)·지르코늄(1824)·타이타늄(1825)을 분리했다. 화학적 기초 위에서 광물들을 분류했고, 텔루륨·바나듐·몰리브데넘·텅스텐·우라늄과 그밖에 여러 가지 원소의 화합물에 대해 더 자세히 연구했다. 때로 중량분석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물중탕·데시케이터·세척병·거름종이·고무관과 개량된 불대를 개발했다.

250편 이상의 스웨덴어로 쓴 독창적인 논문을 스톡홀름의 과학 아카데미 학회지에 발표했으며, 그의 화학·물리학에 대한 진보적인 논문들을 비롯하여 5판이 나온 화학교과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그당시 화학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