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누스

발렌티누스

다른 표기 언어 Valentinus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이집트

요약 영지 혹은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 이원론적 종교사상인 영지주의의 로마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창시했다. 그의 제자들이 세운 발렌티누스 공동체는 2~3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했다.
그의 제자들에 의하면 그는 테오다스의 가르침을 받고 그리스도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 2~3세기 신학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발렌티누스는 136년경 로마로 이주해 그리스도교 교리와 동방의 영지주의를 종합한 자신의 이론을 전파했다. 160년경 키프로스에 도착해 자신의 신화적인 종교 철학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바울로 신학과 영지주의 원리를 혼합한 <진리의 복음>을 썼다고 전해진다.

영지(gnōsis) 혹은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 이원론적(선신과 악신이 대립해 있다는 믿음) 종교사상인 영지주의의 로마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창시했다. 그의 제자들이 세운 발렌티누스 공동체는 2~3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제자들에 의하면, 그는 사도 바울로의 제자라고 전해지는 테오다스의 가르침을 받고 그리스도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 2~3세기 신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발렌티누스는 교황 히기누스(136경~140경 재위) 때인 136년경 로마로 이주해 그리스도교 교리와 동방의 영지주의를 종합한 자신의 이론을 전파하면서 약 25년간 큰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주교가 되고자 열망했으나 140년경 후보에서 밀려나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떠났다. 160년경에는 로마를 떠나 키프로스(알렉산드리아일 수도 있음)에 도착해 그곳에서 자신의 신화적인 종교 철학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바울로 신학과 영지주의 원리를 혼합한 〈진리의 복음 Gospel of Truth〉을 썼다고 전해진다. 4세기 이집트의 파피루스 '융 사본'(Jung Codex:1946 발견)에는 발렌티누스주의자들이 사용한 원문의 콥트어 번역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사본은 그가 쓴 편지의 발췌문과 그의 신학에 적대적 입장을 취한 정통 신학자들이 인용하거나 풀어 쓴 주석을 통해서만 전해져 내려온 발렌티누스의 교리를 재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발렌티누스의 초기 사상체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바울로의 신비주의 신학과 비슷했으나, 동방과 서방의 여러 사상들을 흡수하면서 차츰 복잡하게 발전해갔다. 현대 학자들은 그의 교리가 후대의 인간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영성(靈性)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5세기 영국 출신 수사 펠라기우스에 의해 시작된 펠라기우스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지금까지 교회의 모든 시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