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호스니 무바라크

다른 표기 언어 무바라크 , Hosnῑ Mubārak
요약 테이블
출생 1928. 5. 4, 이집트 알미누피야
사망 2020. 2. 25, 이집트 카이로
국적 이집트
직업 군인, 정치가

요약 이집트의 군인·정치가. 사다트 대통령에 이어 1981년 이집트의 대통령이 된 후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했다.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을 계승하여 아랍권에서는 서방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했으나 대내적으로는 장기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2011년 아랍권에 불어온 반독재·민주화 운동이 이집트에서도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지자 2011년 2월 하야한 후, 재임시의 부정축재와 무력진압에 대한 재판을 받아 수감과 자택연금을 반복했으며, 지병에 시달리다가 2020년 2월 25일 사망했다.

이집트의 정치가. 본명은 Muḥammad Hosnī Said Mubārak. Hosnī는 Husnī라고도 씀.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태어나 1949년 카이로 육군사관학교, 1950년 빌베이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소련에서 고급비행폭격훈련을 받았다. 그후 공군에서 여러 사령관직을 거치다가 1966~67년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1972년 공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무바라크는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초반의 공습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능력에 대한 신임을 얻었고 이듬해 중장으로 진급했다.

1975년 4월 안와르 엘 사다트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된 그는 중동 및 아랍 정책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과정에 참여했으며 서부(스페인령) 사하라의 장래를 둘러싼 모로코·알제리·모리타니 사이의 분쟁에서 주도적인 조정 역할을 수행했다. 그후 무바라크는 이집트-이스라엘 전쟁발발기념일인 1981년 10월 6일 사다트가 암살됨에 따라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주변 아랍국과의 관계개선 및 대(對)이스라엘 관계 냉각화라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무력침공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1987년 선거에서 97%의 지지로 2선, 1993년 선거에서 3선, 1999년 선거에서 4선, 2005년에서 5선에 이르는 등 30년 동안 장기 집권의 길을 걸었다.

무바라크는 전임 사다트 대통령에 이어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을 지속했으며, 소련이 붕괴되고 국제적으로 냉전의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에는 친미 노선을 가속화하여 서방 세계와의 유대관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그러나 대내적으로는 장기 독재 정권 체제를 굳히는 가운데,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반감이 증폭되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하여 북아프리카와 중동지방으로 확산된 반독재·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의 여파가 이집트에도 미치면서 2011년 1월 이집트 국민들이 장기집권중인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무바라크는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려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군경의 무력 충돌로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무바라크는 2월 1일 차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2월 11일 군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하야했다. 무바라크는 반정부시위에 대한 폭력 행사와 재임 중 부정축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고, 6월에 25년형을 구형받아 수감되었다. 그는 2013년 8월 석방 후 가택연금되었다. 2017년 3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었으나 하야한 이후 계속 건강이 악화되어 대부분 병원에서 지냈으며, 2020년 2월 25일 카이로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