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박정양

다른 표기 언어 朴定陽 동의어 치중, 致中, 죽천, 竹泉, 문익, 文翼
요약 테이블
출생 1841(헌종 7)
사망 1904
국적 한말, 한국

요약 한말의 문신.

온건개화파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천(竹泉). 아버지는 제근(齊近)이다.

1866년(고종 3) 별시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1879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1881년에는 조병직·조준영·어윤중·홍영식 등과 함께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정부기관은 물론 각종 사업기관과 조폐공장 등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개화정책 추진에 참가했다.

1887년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로 임명되어 미국에 파견되었으나 청의 압력으로 1889년에 소환되었다. 귀국한 뒤 홍문관 부제학, 호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지내다가, 1894년 군국기무처 회의원이 되었다. 그해 1차 김홍집내각의 학부대신이 되고, 이듬해 2차 김홍집내각이 붕괴되자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과도내각을 조직했다. 을미사변으로 파면되었다가, 3차 김홍집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이 살해되자 내부대신으로 수상을 겸했으며, 내각이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참정대신이 되었다.

1898년 만민공동회에 참석해 시정개혁을 약속했으나 수구파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하지 못했다. 그해 11월 황국협회가 독립협회를 탄압한 사건으로 개각이 될 때 다시 내부대신이 되었다. 저서로 〈죽천고 竹泉稿〉·〈해상일기초 海上日記草〉가 있고, 편서로는 〈일본내무성및 농상무성시찰서계 日本內務省及農商務省視察書啓〉·〈일본내무성시찰기〉·〈일본농상무성시찰기〉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