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시국

바티칸시국

다른 표기 언어 State of the Vatican City 동의어 교황청
요약 테이블
위치 이탈리아 로마
인구 526명 (2024년 추계)
수도 바티칸
면적 0.44㎢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성좌(The Holy See)
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이탈리아인, 스위스인
언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종교 로마가톨릭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나팔나리
대륙 유럽
인구밀도 1,816명/㎢
전압 220V/50Hz
도메인 .va

요약 유럽의 국가. 이탈리아 로마의 티베레 강 서안에 있으며, 성 베드로 광장이 있는 남동쪽을 제외하고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독자적인 통신체계, 은행, 화폐, 우체국, 라디오 방송국, 스위스인 수비대 등을 갖추고 있다.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 통치권은 교황에게 있고, 교황은 행정·입법·사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와 보르지아관에 있는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 라파엘의 방 등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목차

접기
  1. 영역
  2. 역사
  3. 정치와 행정
  4. 국민과 언어
  5. 경제와 사회
  6. 문화
  7. 바티칸시국과 한국과의 관계
바티칸 시티의 국기
바티칸 시티의 국기

로마 시내의 티베레 강 서쪽 기슭에 있는 도시국가. 이탈리아어로는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이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이다.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이름인 '바티칸 언덕(Mons Vaticanus)'에서 유래했다.

영역

바티칸시국은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궁전을 중심으로, 성 베드로 광장이 있는 남동쪽을 제외하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6개의 입구 중에서 광장, 대성당 정면의 종탑 아치, 북쪽 성벽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 등 3개의 입구만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성벽들 안이 바티칸시국이라는 작은 나라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4세기에 지어 16세기에 개축한 성베드로 대성당이다.

역사

바티칸 언덕 지역은 고대 로마인들이 신성시하던 지역이었으나 기원후 40년 경 칼리굴라 황제가 이 지역에 원형경기장을 착공하면서 용도가 바뀌었다. 이 원형경기장은 네로 황제 때에 이르러 완공되었는데, 로마대화재의 범인으로 지목받은 기독교인들이 이 경기장에서 순교했다.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 베드로도 이 원형경기장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져 이 지역에 묻혔다고 전해지는데, 그 묘지 위에 세워진 성당이 옛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4세기 이후 1870년까지 가톨릭 교회의 영향이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에도 바티칸은 로마 주변의 영토를 확보하여 교황령의 수도로 사용했다. 바티칸시국은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당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 바티칸시국에게 주어진 치외법권은 로마 시내에 있는 10여 개에 이르는 바티칸시국 소유의 건물들과 알바 힐스에 있는 교황의 여름 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도 적용된다.

지도
바티칸시티

정치와 행정

이 나라의 통치권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교황이 행사한다. 교황은 바티칸시티 안에서 행정·입법·사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또한 바티칸 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는데, 이들은 교황청 인사들과는 달리 성직자가 아니다. 교황은 교황청의 바티칸시국 위원회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며, 행정권은 중앙협의회의 보좌를 받는 지사에게 위임된다. 바티칸시국은 전 세계의 177개 국가와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나라마다 대사관을 두고 있다. 2013년 3월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임중이다.

국민과 언어

바티칸의 국민은 사제와 수녀가 대부분이지만, 성직자의 비서나 국내외 무역과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평신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바티칸의 국민들은 대부분 바티칸 성벽 밖에 거주한다. 바티칸시국의 여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국민이 아닌 이탈리아 국민들도 일하고 있다. 공식문서는 라틴어로 작성되지만, 공용어는 이탈리아어이다. 국민에게는 시민권이 부여되는데, 시민권은 교황과 추기경, 성직자, 스위스 근위대, 일반 고용자 등에게 주어지며, 업무의 기간이 만료되면 시민권은 해지된다. 2010년 이후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약 1,000명 안팎이다.

경제와 사회

바티칸시국은 독자적인 통신체계, 은행기관, 화폐를 비롯해서 우체국, 라디오 방송국, 100명 이상의 스위스인 수비대, 백화점, 의료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식량·물·전기·가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물자는 수입해야 한다. 소득세가 없고 자금의 유입이나 유출에 대한 규제가 없다. 교황청은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이 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우표, 화폐 및 출판물의 판매와 투자를 통한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은행의 운영과 지출에 대한 자료는 1980년대 이후 공개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문화

이곳의 문화는 교황들이 이탈리아 최고의 예술 후원자였던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많이 쇠퇴했다. 그러나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보르지아관(館)에 있는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 라파엘의 방 등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비평가, 미술가 및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의 복원작업이 1994년 완료되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더욱 생생한 색깔로 되살아났다.

바티칸 도서관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와 그리스도교 시대의 진귀한 사본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15만 여 권의 필사본과 160만 권의 인쇄본 도서가 소장되어 있다. 바티칸시국에서는 영향력있는 일간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곳의 인쇄소는 조지아의 교회언어로부터 인도의 타밀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모든 언어로 책이나 소책자를 발행할 수 있다. 1983년 이후 바티칸시국은 자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으며, 라디오 방송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약 40개의 언어로 제공된다. 바티칸시국은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티칸시국과 한국과의 관계

바티칸시국과 한국과의 관계
바티칸시국과 한국과의 관계

바티칸시국은 1949년 4월 우리나라를 승인했고, 1963년 12월에 한국과 바티칸시국은 공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1966년 9월에 대사급으로 격상하고 한국은 1967년 1월에 주 스위스 대사관이 겸임했다가 1974년 4월에 주 바티칸(교황청) 대사관을 개설했다. 바티칸시국은 1954년 4월에 서울에 상주 교황 사절을 두었다.

1947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교황 비오 12세가 패트릭번 주교를 교황 특사로 한국에 파견했으며, 1948년 12월 12일에 한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로 승인을 받는데 있어 바티칸시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한국 선교 200주년 및 서울대교구 15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의 첫 번째 방한인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을 집전했으며, 1989년에도 방한하여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방문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9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바티칸시국을 방문하여 베네딕토 16세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2014년 박근혜 대통령, 2018년 10월과 2021년 10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상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여 초기 순교자 124명에 대한 시복식을 주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인으로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등 3명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한편 바티칸시국은 북한과 미수교 상태이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