묄렌도르프

묄렌도르프

다른 표기 언어 Paul George von Möllendorf 동의어 목인덕穆麟德
요약 테이블
출생 1848
사망 1901
국적 독일/대한제국

요약 할레비텐베르크마르틴루터대학교에서 동양어와 법률을 전공한 후, 주청독일영사관에서 근무했다. 1869년 청의 세관리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한국 최초의 서양인 고문으로 부임해 통리아문의 외무협판이 되어 외교고문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해관총세무사가 되어 해관 신설 등 통상무역 업무도 총괄했다. 1884년 톈진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내한하자 교섭에 나서 조로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는 데 일조했다. 1885년 부사 자격으로 일본에 가 주일 러시아 공사 다비도프와 러시아 훈련교관 초빙문제를 비밀리에 협의했다. 이로써 정부 관리들과 청·일 양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 외무협판과 해관총세무사에서 해임되었다. 그 후 조선을 떠나 청의 닝보에서 죽었다. 저서로 〈만주어문전〉이 있다.

묄렌도르프 (Paul George von Möllendorf)
묄렌도르프 (Paul George von Möllendorf)

할레비텐베르크마르틴루터대학교에서 동양어와 법률을 전공한 후, 주청독일영사관에서 근무했다. 1869년 청의 세관리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정부는 급박한 주변정세에 대응하고 각국과의 수교 및 상업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청에 제3국인 고문관 초빙을 요청했다. 이때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인 고문으로 부임해 통리아문의 외무협판이 되어 외교고문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해관총세무사가 되어 해관 신설 등 통상무역 업무도 총괄했다.

1884년 조·러 수교를 위해 톈진[天津]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가 내한하자 적극 주선에 나서, 7월 7일 조로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는 데 일조했다.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 군대가 개화파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씨정권을 복귀시키는 데 앞장섰다.

1885년 1월 한성조약이 체결되자 갑신정변의 해명과 김옥균 등 일본으로 망명한 주모자들의 송환을 위해, 특명 전권대신 서상우와 함께 부사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 이때 고종의 허가를 받고 주일 러시아 공사 다비도프(Davidoff)와 러시아 훈련교관 초빙문제를 비밀리에 협의했다. 그런데 군사교관 초청문제는 청·일의 후원과 권고에 의해 미국교관을 초빙하기로 하고, 이미 교섭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김윤식 등 정부 관리들과 청·일 양국의 강한 반발을 샀다. 그에 따라 6월 외무협판에서 해임되었고, 이어 7월에는 해관총세무사에서도 해임되어 조선을 떠났다. 그후 청의 닝보[寧波]에서 죽었다. 저서로 〈만주어문전 滿洲語文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