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쿠콜리

몬테쿠콜리

다른 표기 언어 Raimondo Montecucc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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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09. 2. 21, 모데나 공국 모데나 근처 몬테쿠콜로 성(城)
사망 1680. 10. 16, 오스트리아 린츠
국적 오스트리아

요약 오스트리아의 육군 원수이며 군사개혁가.

거의 반세기 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대를 무적의 군대로 만들었다. 30년전쟁(1618~48) 초기인 1625년 오스트리아 군대에 입대해 1631년 브라이텐펠트, 1632년 뤼첸에서 스웨덴 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군대와 싸워 뛰어난 전과를 거두었다. 1634년 뇌르틀링겐 전투와 1636년 비트슈토크 전투에서 다시 활약했고 1639~42년 스웨덴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학업을 보완하고 군사기술을 연구했다. 전술·전략에 관한 그의 저술들이 이때 집필되기 시작했다. 1642년 전투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교황과 교황의 반대파 사이에 벌어진 카스트로 전쟁(1642~44)에서 자신의 고향 모데나를 위해 싸웠으며 1645년에는 헝가리 반란을 주도한 디외르디 라코치 1세와 맞서 싸웠다. 그는 프랑스-스웨덴 연합군의 대공세에 직면해 교묘한 퇴각술로 바이에른에서 철수함으로써 전공을 세워 장군으로 진급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 체결되고 나서 다시 저술활동에 들어갔으며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외교사절로 활약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육군 원수로 진급된 그는 1658~60년 독일·덴마크·포메라니아에서 스웨덴인을 몰아내고 1661~64년에는 오스트리아를 침략한 투르크인들을 1664년 8월 1일 라브의 센트고트하르드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물리쳤다. 이 일로 그는 그리스도교인들의 구세주로서 추앙되었다.

그후 빠른 승진을 거듭해 1664년에 전(全)제국 군대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1668년에는 제국 최고군사위원회(Hofkriegsrat) 의장이 되었다. 의장으로서 그가 지원한 개혁정책으로는 가벼운 소총의 도입, 라이플 권총으로 무장한 군인의 증가에 따른 보병대의 창병(槍兵) 감축, 척탄병의 엘리트화 등을 꼽을 수 있다. 1672년 프랑스와의 전쟁 때는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제국 군대를 다시 지휘했다. 3년 동안 앙리 드 튀렌 원수의 군대를 거듭 격퇴한 뒤 1675년 노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다. 그는 17세기의 그 누구도 필적하지 못할 전쟁전문가로서 공격과 방어술, 행군과 역행군, 적의 통신망 차단 등 각종 군사기술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상비군 창설을 역설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형태를 예견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군사기술 Dell'arte militare〉(1792)은 중판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