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왕

면화왕

다른 표기 언어 King Cotton

요약 남북전쟁 직전 미국의 면화생산이 차지한 높은 정치적·경제적 입지를 가리키는 말.

면화왕(King Cotton)
면화왕(King Cotton)

남부 정치가나 작가들이 자주 이 용어를 사용했다. 조면기(繰綿機)가 발명된(1793) 뒤 면화는 담배를 제치고 남부 농업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환금작물로 등장했으며, 곧 미국 총수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면화왕'이라는 개념은 데이비드 크리스티가 쓴 〈면화는 왕 Cotton is King〉(1855)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면화가 상품으로서 국내외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신한 남부는 그들의 연방탈퇴가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 자신했다. 연방 상원의원 제임스 H. 해먼드는 상원에서 한 연설(1858. 3. 4)에서 "당신들은 면화와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면화와 싸울 수는 없다. 면화는 왕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남부는 잘못 판단했다. 북부의 능숙한 외교, 영국 노예제폐지론자들의 북부에 대한 충성, 중요한 전투에서의 남부연합의 군사적 패배 등으로 영국은 전쟁에 개입하지 못했다. 영국은 전쟁에 개입해 노예주들을 돕기보다는 대영제국 내부에서 남부를 대신할 면화재배지를 개발했다.

단일경작 경제는 남부 전지역으로 봐서는 손해가 되는 것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부는 계속 이러한 경제를 유지했으며, 20세기에 와서야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남부의 경작 다양화와 산업화가 촉진되었다.→ 남부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