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살라 코르비누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다른 표기 언어 Marcus Valerius Messalla Corvinus
요약 테이블
출생 BC 64경
사망 AD 13
국적 로마

요약 로마의 귀족, 문학 후원자.

메살라는 BC 43년에 집권한 제2차 삼두정치의 집정관들에게 권력을 빼앗기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진영으로 달아났지만, 그들이 필리피에서 패배하자(BC 42) 제2차 삼두정치의 실권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투항했다. 그후 옥타비아누스와 손을 잡고, 그의 실권 장악을 위해 섹스투스 폼페이우스(BC 36), 일리리아인들(BC 35~34), 알프스의 살라시족(BC 34~33)과 맞서 싸웠다.

BC 31년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안토니우스 대신 집정관으로 선출된 그는 악티움 전투(BC 31)에서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싸웠다. 메살라는 속주 총독으로서 아퀴타니아(지금의 프랑스 남서부)를 점령했고, 그후 동부 주둔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BC 11년에는 수로 감독관(curator aquarum)이 되어 투스쿨룸과 알바를 잇는 라티나 도로를 복구했고, 여러 개의 건물을 재건했다.

그는 문학 후원자로서 시인인 알비우스 티불루스와 술피키아를 자신의 문학 서클로 끌어들였고, 오비디우스를 후원하기도 했다. 메살라 자신의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카이사르가 죽은 뒤의 내란을 다룬 그의 회고록은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었다.

메살라는 그리스어로 목가시를 썼고, 그리스어 연설문을 번역했으며, 이따금 풍자시와 연애시도 지었고 문법에 대한 평론도 썼다. 웅변가로서는 아티카풍 대신 키케로를 추종했지만, 그의 문체는 아티카풍이었다. 말년에 그는(혹은 그의 친척인 메살라 루푸스일지도 모름) 로마의 위대한 가문들에 관한 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