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난드로스

메난드로스

다른 표기 언어 Menandros
요약 테이블
출생 BC 342경
사망 BC 292경
국적 아테네, 그리스

요약 아테네의 극작가.
(영). Menander.

고대 비평가들은 그를 아테네에서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 무대 희극인 그리스 신희극의 가장 탁월한 시인으로 평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해서, 100편이 넘는 희곡을 썼지만 아테네 연극 축제에서 우승한 것은 8번 뿐이었다.

그당시 희극은 공적인 사건을 다루기보다 일상생활 속의 허구적 등장인물들을 주로 다루었으며, 합창단의 역할은 대체로 막간 여흥의 공연에 제한되었다. 배우들은 여전히 가면을 썼지만 그들이 쓴 가면은 풍속 희극이 요구하는 좀더 다양한 등장인물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며, 관객이 연극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도 그 등장인물이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그는 그당시 그리스어 사용지역의 문어였던 세련된 아티카 방언으로 글을 썼으며, 엄한 아버지, 젊은 연인들, 탐욕스러운 매춘부, 음모를 꾸미는 노예 등의 인물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가벼운 필치의 희극을 다루는 절묘한 솜씨는 〈디스콜루스 Dyscolus〉에서 퉁명스러운 염세주의자로 등장하는 크네몬이라는 인물에 가장 뚜렷이 드러나 있으며, 또한 〈페리케이로메네 Perikeiromenē〉(이 작품은 제 자랑만 늘어놓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 관례였던 군인을 동정적으로 다룬 점이 흥미로움)·〈제2의 아델포이 Second Adelphoe〉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등장인물과 윤리관 사이의 미묘한 마찰과 대조를 표현해내는 솜씨도 탁월했다.

로마의 작가인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는 메난드로스의 작품을 많이 각색했는데, 그들을 통해 메난드로스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럽 희극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작품은 메난드로스의 작품 중 사라진 부분을 많이 보완하고 있는데, 실상 메난드로스의 희곡은 〈디스콜루스〉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디스콜루스〉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몇 장의 파피루스 사본을 토대로 1958년 처음 출판되었다.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부유하고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였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였다고 한다.

BC 321년에 첫 희곡인 〈분노 Orgē〉를 상연했고, BC 316년 〈디스콜루스〉로 그리스 연극 축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 열린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BC 301년까지 70편이 넘는 희곡을 썼다. 생애의 대부분을 아테네에서 보낸 것으로 추측되며, 마케도니아와 이집트로 오라는 초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피레에프스(아테네의 항구)에서 수영을 하다 익사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