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르브

말레르브

다른 표기 언어 François de Malher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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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55, 프랑스 캉 또는 그 근처
사망 1628. 10. 16,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시인.

스스로를 '뛰어난 음절배열가'라고 부른 시인이자 이론가로 엄격한 형식, 절제, 순수한 어법을 강조하여 프랑스 고전주의의 기반을 닦았다.

캉과 파리, 바젤대학(1571)과 하이델베르크대학교(1573)에서 신교 교육을 받았으나 곧 개종하여 미온적인 가톨릭교도가 되었다. 1577년 앙리 당굴렘 지사의 비서가 되어 프로방스로 갔다. 처음으로 출판된 시 〈성 베드로의 눈물 Les Larmes de Saint Pierre〉(1587)은 루이지 탄실로가 쓴 〈Lagrime di San Pietro〉를 화려한 문체로 모방한 시이다. 엑스의 두 법률가인 스토아 철학가 기욤 뒤 베르 및 학식이 높은 니콜라 클로드 파브리 드 페레와 사귐으로써 인격을 높이고 재능을 성숙시킬 수 있었다.

1600년 새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를 찬미하는 송가를 써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605년 파리로 가서, 친구들인 페레, 뒤 베르, 추기경 뒤페롱의 후원을 받았다. 앙리 4세는 시에 관심도 없고 관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궁정시인이 되어 궁정의 후원을 받아 품위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몇 명의 제자 중 오노라 드 뷔에이 라캉과 프랑수아 메나르가 가장 유명하다. 그의 비평적 영향력은 날카로운 공격의 글로 행사된 것이 많았는데, 라캉이 쓴 그의 전기와, 제데옹 탈망 데 레오가 쓴 〈일화 Historiettes〉(1659경, 출판 1834)에 그 일부가 실려 있다.

산문으로는 리비우스와 세네카를 번역한 글과 궁정생활을 흥미롭게 묘사한 페레에게 보낸 200편의 편지, 그리고 시인 필리프 데포르트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있다. 이 글들은 시작(詩作)의 하찮은 부분들에 주목하여 너무 자세하고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러나 말의 조화·적합성·명료함, 특히 시인을 예언자라기보다는 장인(匠人)으로 생각한 점 등 일부 긍정적인 원칙도 비치고 있다.

말레르브 자신의 시는 상상력과 시상(詩想)이 부족하고 압운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밖에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잘 된 작품들이 지닌 조화미와 강렬함에는 기품과 위엄까지 깃들어 있다. 프랑스 시에 있어서 말레르브의 영향력은 낭만주의 시대와 그 이후까지도 뚜렷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