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평화회의

만국평화회의

다른 표기 언어 the International Peace Conference , 萬國平和會議

요약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제창하여 개최된, 세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국제회의로서 참가국들은 군비 축소와 평화 유지 문제를 협의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제2차 회의 때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이준·이상설·이위종 3명의 특사를 파견해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폭로하고, 국제 여론의 도움을 얻어 조약을 파기시키려 했지만 일본 측의 방해 공작으로 실패했다. 네덜란드 정부와 평화회의 의장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넬리도프는 을사조약이 이미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은 이상 이 문제에 대한 거론이 불가능하다며, 회의 참가까지 거절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물러나게 하고 순종을 세웠으며, 한·일 신협약을 체결하고 구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제 1차 헤이그 회의
제 1차 헤이그 회의

제1차 회의는 1899년 26개국이 참가했고, 제2차 회의는 1907년 44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군비축소와 평화유지 문제를 협의했으나 군비축소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유독 가스 및 특수 탄환의 사용금지 선언 등을 조인했고, 국제중재재판소 설치에 합의했다(→ 헤이그 조약).

특히 제2차 회의 때에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이준(李儁)·이상설(李相离)·이위종(李瑋鍾) 3명의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 등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폭로하고, 국제여론의 도움을 얻어 조약을 파기시키려 했다. 회담 개최 며칠 전 헤이그에 도착한 3명은 고종의 신임장을 제시하며 한국의 전권위원으로 평화회의 참가를 요구하는 한편 을사조약의 파기를 회의의 정식 의제로 상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측 대표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의 방해 공작으로 네덜란드 정부와 평화회의 의장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넬리도프는 을사조약이 이미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은 이상 이 문제에 대한 거론이 불가능하다며, 회의 참가까지도 거절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물러나게 하고 순종을 세웠으며,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구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헤이그 밀사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