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플랜

마셜 플랜

다른 표기 언어 Marshall Plan 동의어 유럽부흥계획, European Recovery Program

요약 마셜은 1947년 유럽의 자립계획에 미국이 재정지원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마셜 플랜을 위해 설립된 '경제협력국'은 4년간의 경제원조로 유럽의 산업을 회복시키고 재정을 안정시켰으며 무역 신장을 도왔다.
원조금은 대부분 영국·프랑스·이탈리아·서독·네덜란드에 제공되었으며 서구 여러 나라의 무역적자와 달러 부족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52년부터는 상호안전보장에 기반한 원조가 계속되었다.
마셜 플렌은 미국의 수출시장을 확대시켰고 서구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가시켰다. 1949년 이후에는 군사원조의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성립시키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마셜 플랜에 의한 경제원조가 성공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확대해 '포인트 포 프로그램'을 세우고 저개발국들에게 원조하기 시작했다.

마셜 플랜
마셜 플랜

미국은 전후의 빈곤·실업·혼란으로 인해 서구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의 국무장관 조지 C. 마셜은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유럽의 자립계획에 미국이 재정지원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 계획의 입안에는 국무성·육군성·해군성의 3성 조정위원회(SWNCC)와 조지 케난이 주재하는 국무성 정책 기획본부, W. 크렌던 국무차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계획은 유럽 여러 나라의 주도적인 역할을 존중하는 형태로 제창되었기 때문에, 1947년 6월말 영·프·소 외상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소련은 이 계획을 반대했다.

결국 7월에 유럽 경제협력위원회(CEEC)에 참가한 16개국(후에 서독과 스페인이 가입하여 18개국으로 늘어남)의 대표가 유럽경제재건안을 제출했고, 미국 의회는 그 안을 기초로 해서 유럽 부흥계획을 승인했다. 초기에는 소련의 군사점령하에 있는 나라들까지 포함하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원조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되어 그리스-터키 군사원조가 요청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마셜 플랜도 냉전의 전개와 관계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 트루먼 선언에 의해 명확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마셜 플랜은 반소·반공 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서구제국의 경제부흥과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소련은 처음부터 이 계획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으며, 이에 따라 소련 영향권에 속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이 계획에서 곧 탈퇴했다(제2차 세계대전).

마셜 플랜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경제협력국'(ECA)은 폴 G. 호프만의 지휘 아래 이후 4년간 약 12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산업 및 농업 생산을 회복시키고 재정을 안정시켰으며 무역 신장을 도왔다.

원조의 대부분은 직접보조금의 형태였으며 나머지는 대부 형식으로 제공되었다. 이에 참가한 16개국은 상호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경제협력위원회'(Committee of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CEEC)를 조직하고 4개년부흥계획을 제출했다. 이 위원회는 이후 상설기구인 '유럽 경제협력기구'(Organis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OEEC)로 대체되었으며 이때 서독도 참가하게 되었다. 이 계획이 종료된 1952년 중반까지 총 12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금은 대부분 영국·프랑스·이탈리아·서독·네덜란드(원조액순)에 제공되었으며 서구 여러 나라의 무역적자와 달러 부족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52년부터는 상호안전보장(Mutual Security Act/MSA)에 기반하여 원조가 계속되었다. OEEC로부터는 1950~52년에 유럽 결제동맹(European Payment Union/EPU) 및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 1958~59년에는 유럽 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EFTA)이 생겨났다. OEEC 자체는 1961년 9월에 기존 18개국에 미국과 캐나다가 가입하여 20개국 회원국으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OECD)로 발전하여 자연적으로 해체되었다.

4개년계획은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몇몇 서유럽 국가들은 이 기간 동안에 국민총생산이 15~25%까지 증가했고, 화학·기계·철강 등의 산업 분야가 아주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 의한 원조액의 약 70%는 유럽 여러 나라가 미국의 잉여농산물과 그 생산품을 수입하는 데 쓰여졌으므로 결과적으로 미국의 수출시장을 확대시켰고 서구 여러 나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가시킨 일면도 있다. 또한 1949년 이후 원조의 대부분이 군사원조의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성립시키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어쨌든 마셜 플랜에 의한 경제원조가 크게 성공하자 이에 고무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이 계획을 확대해 1949년부터 '포인트 포 프로그램'(Point Four Program)을 세우고 전세계에 걸쳐 저개발국들에게 원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