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주

리에주

다른 표기 언어 Liege
요약 테이블
위치 벨기에 남부 왈롱 지역의 북동부
인구 682,000명 (2022년 추계)
면적 69.39㎢
대륙 유럽
국가 벨기에

요약 벨기에 동부 리에주 주의 주도. 우르트 강과 뫼즈 강이 만나는 곳에서 뫼즈 강을 끼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로마인들에게는 레오디움으로 알려졌다. 이후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한 후 발전하여 주요 산업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서유럽에서 3번째로 중요한 하항이며, 벨기에에서 2번째로 큰 철도중심지이다.

리에주(Liege)
리에주(Liege)

우르트 강과 뫼즈 강이 만나는 곳에서 뫼즈 강을 끼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로마인들에게는 레오디움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705년 살해된 마스트리히트의 주교 성 람베르트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721년 성 후베르트가 자신의 관구를 이곳으로 이전해옴에 따라 도시를 이루게 되었다. 이곳 최초의 승정왕이었던 노트게르 통치하에서 리에주 군주국이자 모산파(派)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유럽의 주요학문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에 자치행정권(1185)과 시민특권(1195)이 주어지고 상인 조합에게 마을 평의회대표권이 수여된(1303) 이후, 상인 조합과 귀족 사이에 한 차례 세력다툼이 있었다. 귀족들이 급습에 실패하여 1312년 이들의 무장 세력은 생마르탱 교회에서 주민들에 의해 화형되었는데, 이 사건은 말생마르탱(Male SaintMartin)으로 알려져 있다. 1313년 노동자와 대부분의 상인 조합에게 정치적 평등권이 주어졌다.

15세기 부르고뉴의 네덜란드 지배기간중 이곳은 저항하여 대담왕 샤를한테 2차례 약탈당했다(1467, 1468). 1477년 샤를이 죽은 뒤 이 도시는 재건되어, 16세기에는 승정왕 에브라르 드 라 마르크의 통치 밑에서 새로운 번영을 이룩했다. 승정왕과 시민들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투쟁으로 1684년 민주제도가 붕괴되었다. 1691년 프랑스의 침략을 받았으며 1702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중 영국에 넘어갔다. 1789년 무혈혁명으로 귀족통치가 끝났으며, 1795년 프랑스에 합병되었다가 1815년 벨기에의 다른 지역과 함께 네덜란드 영토가 되었다. 1830년 벨기에 혁명에서 이곳 주민들은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한 후 발전하여 주요 산업중심지가 되었다. 1891년 요새화되어 뫼즈 강 방어를 위한 중요한 성채가 되었으며, 2차례의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점령당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한 공중폭격을 받기도 했다. 공업지대인 뫼즈 강 유역은 상업중심지로 제철·제강·유리제품·채탄·무기제조·동제련 등과 같은 산업이 이루어진다.

서유럽에서 3번째로 중요한 하항이며, 벨기에에서 2번째로 큰 철도중심지이다. 공항은 인근 지역인 비에르세에 있다. 이전에 생폴 수도원이었던 성당에는 성 람베르트와 샤를 대제의 성골함이 있다. 그밖에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고딕 양식의 교회로는 생드니, 생자크, 생마르탱, 생크아(1150년부터 금으로 된 3폭패널화 소장)와 세례 연못(1108)을 갖고 있는 생바르텔르미 성당 등이 있다. 15세기에 세워져 18, 19세기에 보수된 승정왕의 궁정은 지금 법원으로 쓰인다.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이었던 생로랑은 1796년 이래 군대 병원이 되었다.

왈로니아(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지역)의 문화중심지로서 연주회장, 극장, 오페라하우스, 여러 개의 훌륭한 박물관,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가 살던 집 등이 있다. 여러 박물관으로는 미술박물관, 왈롱 민속박물관, 안셈부르크 장식미술박물관, 고고학박물관(메종 쿠티우스, 1600경 설립), 무기박물관 등이 있다.

주립대학교(1817)는 1960년대에 남부의 새로운 부지 위에 전체적으로 다시 지어졌다. 로열 음악학교(1887)는 외젠 이자이가 설립한 바이올린 학교로 유명하다. 또한 리에주의 주요산업체들과 제휴하여 설립한 국립연구소와 기술학교가 몇 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