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콩트 드 릴

르콩트 드 릴

다른 표기 언어 Charles-Marie-René Leconte de Lisle
요약 테이블
출생 1818. 10. 22, 프랑스 레위니옹 생폴
사망 1894. 7. 17, 파리 근처 루브시엔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시인.

고답파의 선도자로 1865~95년 무렵에는 빅토르 위고 다음가는 훌륭한 시인으로 인정되었다.

그의 시작 이론은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어 시에 있어서의 몰개성과 자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은근히 선동적이고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그의 서사시는 때때로 지나치게 수식되고 박학을 과시하지만, 단시들은 사람의 마음을 끌며 개인적인 시상(詩想)을 전달하는 것으로서 〈카인 Qaïn〉(1869)은 19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단편 서사시 중 하나이다.

1837년 렌대학에 입학했으나 문학을 하기 위하여 법학을 포기했다.

가족들의 부름으로 레위니옹에 돌아와 1843~46년에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머무르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샤를 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을 보급하던 일간지 〈데모크라시 파시피크 La Démocratie pacifique〉에서 일했다. 그후 몇 년 동안 그리스 신화를 빌어 시를 쓰며 혁명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상징적으로 피력했다. 정치적인 글들도 썼으며, 1848년 2월 혁명에 실질적으로 관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후에는 계속 공화당원으로 남기는 했으나, 시인은 정치적인 행동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최초의 시집은 1852년에 출판되었다. 뒤에 그는 자신의 여러 시집들에 수록되었던 시들을 모아 정리하여 〈고대 시집 Poèmes antiques〉·〈이교도 시집 Poèmes barbares〉·〈비극 시집 Poèmes tragiques〉으로 엮었으며, 그가 죽은 뒤인 1895년에는 〈마지막 시집 Derniers poèmes〉이 출판되었다. 거의 평생 동안, 글을 써서 어머니와 누이들과 아내를 부양하는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 지냈다.

그리스 및 라틴 문학작품의 번역서들을 출판했고, 3권의 반교권적이며 공화주의적인 책자(1871~72)와, 피에르 고세라는 가명으로 〈중세사 Histoire du Moyen Âge〉(1876)를 발표했다. 1873년 한직인 상원도서관의 사서가 되었으며, 1886년 위고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거대하고 냉혹한 이 세계가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비교종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과 당대의 과학적인 발견에 영향을 받아 그의 서사시는 그리스·인도·켈트·스칸디나비아·폴리네시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등의 종교와 문명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몇 편의 시들은 우주의 파괴를 공포보다는 환희로써 묘사한 것으로, 덧없는 세상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잔인한 힘 앞에서 시인은 실재하는 풍성한 아름다움을 더욱 예리하게 음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