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2세

루트비히 2세

다른 표기 언어 Ludwig II 동의어 독일인 루트비히, Ludwig der Deutsche
요약 테이블
출생 804경
사망 876. 8. 28, 프랑크푸르트
국적 동프랑크

요약 후에 독일 국가로 발전한 동프랑크를 다스린 왕.
(영). Louis Ⅱ. 별칭은 독일인 루트비히(Ludwig der Deutsche).

카롤링거 왕조의 경건왕 루트비히 1세의 셋째아들인 그는 817년 제국 분할 때 바이에른을 상속받기로 결정되었으며, 825년에 바이에른 통치권을 위탁받아 이듬해부터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830~833년 아버지 루트비히 1세에 대항하는 반란에 가담했으며, 840년 아버지가 죽은 뒤 큰형 로타르 1세가 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배다른 동생인 대머리왕 카를과 함께 대항했다. 그뒤 베르됭 조약(843. 8)에 따라 카를과 로타르는 제국의 서부와 중부를 각각 차지했고, 루트비히는 동부와 함께 프랑켄·슈바벤·바이에른·작센 지방의 영토를 차지했다.

853년 카를에게 대항한 서프랑크의 귀족들이 루트비히에게 원조를 청하자 아들 소(小)루트비히를 아키텐으로 보냈으며, 858년에는 자신이 직접 서쪽으로 가서 샤를을 폐위하려 했으나 2번 다 실패하고 결국 860년 코블렌츠 평화조약을 맺어 카를의 영토에 대한 권리주장을 취소했다.

855년 로타르 1세가 죽자, 그의 영토는 아들들에게 분배되었는데 둘째 아들인 로타르 2세가 로타링기아(로렌)를 물려받았다. 그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루트비히와 카를은 조카 로타르가 죽은 뒤 로타링기아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865, 867/868). 그러나 869년 로타르가 죽었을 때, 카를이 약속을 어기고 로타링기아를 합병하자, 870년 루트비히는 로타링기아를 침공했다. 그뒤 메르센 조약에 따라 로타링기아를 분할해 루트비히는 라인 강 서쪽의 광대한 땅과 프리슬란트를 차지했다.

865년과 872년에는 3명의 아들인 카를로만, 소루트비히, 비만왕 카를 3세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으나, 이 분할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861~873년에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루트비히는 모라비아 지방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프랑크족 선교사들을 지원했으나, 그 지방을 계속 다스리는 데는 실패했으며, 전쟁에 져서 874년 이후 대(大)모라비아는 독립했다. 황제 칭호를 얻는 데도 실패했고, 로타르 1세의 아들인 황제 루트비히 2세가 죽은 뒤 자기 후손을 이탈리아 왕위에 앉히려 했지만 그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황제 루트비히 2세는 죽을 때(875. 8) 카를로만을 후계자로 선언했으나, 대머리왕 카를이 그를 제치고 요한네스 8세 교황의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올랐다. 루트비히는 로타링기아에 있는 카를의 영지에 쳐들어가려다 실패했고, 그뒤 다시 카를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