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종교

로마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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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BC 8세기에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AD 4세기까지 로마인의 종교적 신앙·의식·제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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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마 초기의 종교
  2. 에트루리아 시대의 로마 종교
  3. 공화정 시대의 로마 종교
  4. 제국시대의 로마 종교

로마인에게 종교는 전체 사회를 위해 규정된 의식을 정확하게 준수하는 것이었다. 번영과 건강, 풍성한 결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신인동형론적 신보다는 추상적인 힘으로 생각되는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규정된 의식을 엄격하게 시행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경건은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고 의식상의 의무를 충실히 준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 종교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의식, 축제력, 여러 신의 숭배에 관한 정보는 BC 1세기의 로마 학자 바로 같은 고대인이 쓴 상당히 후대의 자료에서 나왔다. 그는 로마 종교가 이미 그리스 종교의 영향을 받았던 때에 집필해서 당대의 신앙과 의식을 과거의 것과 혼동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문헌상의 증거는 비문·미술품·화폐 등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로마 초기의 종교

우리가 알 수 있는 로마 역사의 가장 최초의 기간(BC 7세기)에 로마인은 몇 개의 '높은 신'의 관념을 발전시켜왔다. 그들 가운데 중요한 신은 주피터인데, 그의 이름은 그리스의 제우스 및 산스크리트의 디야우스와 어원학적으로 같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피터는 농부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하늘과 날씨의 신이었다. 주피터와 일찍부터 관련되어 있던 다른 2명의 신은 마르스와 퀴리누스였다. 적어도 주노라는 한 여신은 로마 시대 초기에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그녀는 본래 주피터나 다른 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여성의 생활을 감독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 가장 특징적인 신은 제한되고 매우 한정된 역할을 하는 모호한 존재들이었다. 더 위대한 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에게 바르게 구하기만 하면 그들은 이러한 능력을 자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리라 여겨졌다. 그러나 로마인의 호기심은 이러한 범위를 넘지 않았기에 로마 신은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고, 결혼한 쌍을 이루지 않았으며 후예도 없다. 그들을 바르게 부르고 정당한 말과 몸짓으로 섬기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에 정교한 예배 의식 체계가 발전했고 이러한 의식 목록에는 인간사의 가장 미세한 부분을 주관하는 하위 신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신들과 그밖에 여러 신에 대한 예배 의식은 역사시대의 정교한 사제제도에 의해 규정되었는데, 역사시대 초기의 사제직은 아주 단순했을 것이다. 최상층부에는 3명의 최고 성직자단과 더불어 3명의 주신을 포함한 개별 신을 받드는 15명의 사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광장에 있는 국가 성화(聖火)를 지키는 6명의 베스타 제녀(Vestal Virgins)가 있었다. 성직자 계급은 없었고 대부분의 사제직은 세속의 직책에 따라 주어졌다.

에트루리아 시대의 로마 종교

타르퀸인의 에트루리아 왕조(BC 6세기 후반)는 로마 종교에 여러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때까지는 신상 없이 예배가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제의적 신상이 도입되었고, 에트루리아 양식의 신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가령 주피터 신전). 정교한 장례식도 에트루리아에서 유래한 듯하다.

에트루리아인은 로마인에게 번갯불로 점을 치는 방법뿐 아니라 희생 짐승의 내장으로 점치는 복잡한 방법을 전해주었고, 10개월로 된 원시 로마인의 종교력(음력)은 12개월로 된 에트루리아력(양력)으로 바뀌었다. 이 기간에 순수한 에트루리아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받아들였다. 주피터에 대한 예배 의식에서 주피터의 동반자는 주노와 미네르바였다. 이렇게 3명의 신이 동반자로 연결된 것은 에트루리아를 통해 들어온 그리스 문화의 결과였다(→ 그리스 종교).

두 여신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딸인 아테나와 동일시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러한 점이 입증된다. 비너스·포르투나·다이아나는 이 기간에 토착적인 이탈리아의 토양에서 등장했다. 로마 역사 초기의 신 가운데 라틴어 어원을 찾을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신들이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은 에트루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령 불의 신 볼카누스, 본래 역할을 알 수 없는 사투르누스, 강의 신(티베르 강의 신인 듯함) 볼투르누스 등이 그 예이다.

공화정 시대의 로마 종교

로마의 영토가 팽창됨에 따라 로마는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공동체와 관계가 밀접해졌고 나중에는 그리스 자체 및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과도 더욱 밀접해졌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종교의식이 등장하여 새로 받아들여지거나, 때로는 그리스 신과 로마 신을 동일시하여 기존 종교의식이 변형되었다. 아폴론 숭배(BC 5세기 후기)도 새로 들어온 것이며 본래 로마 신 중에는 아폴론에 해당하는 신이 없었다.

아스클레피오스(아에스쿠라피우스)는 역병(疫病)에 맞서 싸우기 위해 BC 293년 로마에 받아들여졌다. 로마에서 인정된 최초의 동방 종교는 BC 204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의 결정적인 시기에 받아들인 대모(大母 Cybele) 숭배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은 이 신의 난교(亂交)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8년 뒤(BC 186) 마찬가지로 난교적 성격을 지닌 디오니소스(바쿠스) 숭배가 너무 유행하게 되어 로마 원로원은 그로 인해 로마가 전복될 것을 우려해 이 종교 의식에 개입하여 억압했다.

로마 종교의 헬레니즘화에서 획기적인 사건은 BC 217년에 렉티스테르니움으로, 신들이 손님으로 초대되는 축제였다. 그러한 축제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방식이 신을 보이지 않게 참석시키는 것인 데 반해 이 축제에서는 과거 한니발과의 초기 싸움에서 패한 충격으로 로마인은 신의 은총을 얻어내기 위해 고안한 수많은 수단에 호소했다. 217년 렉티스테르니움에서는 신상으로 신이 현시되었고 완전히 그리스적인 방식으로 주피터는 주노와, 마르스는 비너스와 짝지어졌다. 렉티스테르니움의 신상들은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그리스 12신을 모아놓았기에 로마의 신은 그리스인의 신앙과 신화에 나오는 그리스 신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제국시대의 로마 종교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고대 신전이 재건되었고, 전통적인 로마 종교의식이 부활되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와 제국시대에는 그리스의 전통종교나 로마 종교가 만족시킬 수 없었던 개인적인 차원의 강한 종교적 욕구가 크게 늘어났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의 동양 종교가 받아들여졌다. 이들 종교는 신봉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신은 은총이나 영생을 허락한다고 약속했으며 통상 신비로운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들어온 종교는 이시스 숭배로 이집트에서 유래했지만 서방에 전수되는 과정에서 상당히 헬레니즘화되었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것이 대모의 배우자인 아티스에 대한 숭배였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미트라 숭배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 신은 남자만을 위한 신으로 특히 군대에서 인기가 높았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대중은 점성술과 마술에 사로잡혔고, 태양 숭배는 제국시대 후기에 주로 신봉되었다. 시리아의 종교(원래 태양숭배였는지 나중에 그렇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음)도 여러 황제에 의해 권장되었으며 아우렐리아누스 시대에는(275 죽음) 솔 인빅투스(정복되지 않는 태양)가 로마 최고신으로 추앙되었다. 이러한 종교세계에서 그리스도교가 자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1년 칙령으로 이교를 금지하는 종교입법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