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크

레베크

다른 표기 언어 René Léve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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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2. 8. 24, 캐나다 퀘벡 뉴칼라일
사망 1987. 11. 1, 몬트리올
국적 캐나다

요약 프랑스어권인 퀘벡 주의 총리(1976~85)이며 퀘벡을 영어권 캐나다에서 독립시킬 것을 주장한 정치가.

레베크는 가스페지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퀘벡 주의 라발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 때 이미 시간제로 언론활동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법률공부를 중단하고 유럽에 가서 미군의 종군기자로 일했다(1944~45). 전후 퀘벡으로 돌아와서 1946년 캐나다 방송회사(CBC)의 외신부에서 일했다. 1952년 6·25전쟁에서 종군기자로 일했고, 1956~59년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해설자가 되었다.

1960년 정치활동을 시작해 궤벡 의회의 구앵 지역 자유당 의원이 되었고, 장 르사주 정부의 공공사업 및 수력자원장관(1960~61)에 임명되었다. 그뒤 새로 생긴 천연자원장관(1961~65)으로 있다가 1966년 르사주 정부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가정 및 사회복지장관에 임명되었다. 한편 그는 1962년과 1966년 로리에 선거구에서 재선되었다.

1967년 10월 레베크는 동료들과 함께 '주권연합운동'(Movement Souveraineté-Association)이라는 단체를 세워 프랑스어권 지역의 독립을 주장했으며, 그 다음해 여러 분리주의자 단체들이 합쳐 결성된 퀘벡당의 초대 총재가 되었다. 그러나 1970년 및 1973년 선거에서 떨어진 뒤 언론계로 돌아와 〈주르날 드 몬트레알 Journal de Montréal〉과 〈주르날 드 퀘벡 Journal de Québec〉지(紙)에 매일 정치기사를 기고했다. 그러다가 1976년 자신의 당이 퀘벡 의회에서 승리하자 퀘백 총리가 되었고, 1981년 4월 총리에 재선되었다.

레베크와 퀘벡당 정부의 목표는 '주권연합'으로 표현되는 퀘벡의 독립이었다. 이것은 퀘벡이 자체적인 법률을 가지고 퀘벡 주민들에게 직접 세금을 거두며,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맺는 동시에 캐나다의 나머지 주와는 같은 통화를 사용해 경제적 연합을 도모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안은 퀘백 역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보인 1980년 5월 20일의 국민투표에서 59.6%의 반대로 거부되었다. 그뒤 주권연합 계획이 상당히 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 재선에서 볼 수 있듯이 레베크의 개인적 인기는 계속되었다.

1985년 6월 건강상의 이유로 퀘벡당 총재직을 사임했으며, 그뒤 퀘벡 총리직도 사임했다. 이때쯤 퀘벡당의 인기도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