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조이

러브조이

다른 표기 언어 Elijah Parish Lovejoy
요약 테이블
출생 1802. 11. 9, 미국 메인 알비온
사망 1837. 11. 7, 일리노이 알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신문 편집자, 노예제도 폐지론자.

미국이 남북전쟁(1861~65)으로 치닫던 시기에 노예 주에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다 살해되었다(→ 노예제).

1827년 러브조이는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 학교를 설립하고 언론계에 뛰어들었다. 6년 후 그는 장로교 주간지인 〈세인트루이스 옵서버 St. Louis Observer〉의 편집인이 되었으며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한편 점진적인 노예 해방을 지지하게 되었다. 미주리 주는 그당시 노예제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노예 주였다.

1835년 세인트루이스의 많은 저명 인사들이 서명한 1통의 편지가 그에게 배달되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사설의 논조를 완화시키라는 요구였다. 그는 자신의 견해와 그것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답변을 되풀이해서 사설에 실었다. 그러나 군중폭동의 위협으로 그의 신문사는 미시시피 강을 건너 노예 자유주였던 일리노이 알턴으로 옮겨야 했다. 이렇게 새로운 지역으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사가 1년 사이에 몇 번씩이나 폭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마침내 1837년 11월 7일 밤 폭도들이 신문사를 습격하여 러브조이를 살해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북부사람들을 크게 자극시켰고 그결과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운동은 더욱 격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