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미쓰쿠니

도쿠가와 미쓰쿠니

다른 표기 언어 Tokugawa Miitsukuni , 德川光 동의어 미토 고몬, 水戸黄門
요약 테이블
출생 1628. 7. 11, 일본 히타치 구니[日立國] 미토[水戶]
사망 1701. 1. 14, 히타치 구니 니시야마[西山]
국적 일본

요약 일본의 봉건영주.

도쿠가와 미쓰쿠니(Tokugawa Miitsukuni)
도쿠가와 미쓰쿠니(Tokugawa Miitsukuni)

중국의 왕조사를 모범으로 삼아 일본 역사를 포괄적으로 기술한 〈다이니혼시 大日本史〉의 편찬을 시작했다. 이 책은 1906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지만 대부분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졌으며 그 편찬사업은 일본에서 유학(儒學)이 뿌리를 내리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일본의 민족정신과 덴노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일깨우는 데도 이바지했다. 미쓰쿠니는 도쿠가와 가문의 후손으로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첫번째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손자였으며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봉건 영지 중 하나인 미토 한[水戶藩]의 영주이자 도쿠가와 정권의 핵심인물이기도 했다. 젊은시절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 미쓰쿠니는 일본 역사를 다룬 종래의 모든 저서들이 단순한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고전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30세 때 역사편찬사업을 시작했다.

〈다이니혼시〉의 체제는 12세기 중국의 유학자 주희(朱熹)가 이루어놓은 역사연구와 비슷하다. 그는 주희처럼 자신의 연구가 과거의 인물들을 평가하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덕'을 가르침으로써 도덕적·교훈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했다. 다행히 그는 많은 훌륭한 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며 특히 중국 명의 유신(遺臣)인 주순수(朱舜水)의 도움은 이 책의 편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 왕실의 역사와 덴노의 권력이 바쿠후로 넘어가게 된 과정들을 밝혀냄으로써 그는 덴노에 대한 충성심을 일깨웠다. 그 결과 그의 영지인 미토 한은 존왕운동(尊王運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 운동은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 1868]으로 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