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해방령

농노해방령

다른 표기 언어 Emancipation Manifesto

요약 제정 러시아의 농노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1861년 3월 3일(구력 2. 19)에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공포한 포고령.

'농노종속에서 벗어나는 농민에 관한 법'(Polozheniya o Krestyanakh Vykhodyashchikh iz Krepostnoy Zavisimosty)이라고 부르는 17개 법령과 함께 공포되었다(→ 농노제).

크림 전쟁 때 제위에 오른 알렉산드르는 전쟁에 패한 뒤 여론이 나빠지고 격렬한 농민반란이 날로 잦아지자 케케묵은 러시아 사회구조를 철저히 개혁하는 것만이 서유럽 열강과 러시아가 나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먼저 농노제 폐지를 결정하고 1856년 4월 귀족들에게 한 연설에서 이 뜻을 밝혔다.

다음해 1월 이 문제를 검토할 비밀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로 보수적인 지주들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농노해방계획을 마련할 지방귀족위원회 구성을 공개적으로 승인했다(1857. 12). 1859년말 각 지방위원회는 '기안소위원회'로 건의서를 보냈으며, 그곳에서는 이를 평가하고 농노해방을 위한 초안을 만들어(1860. 10) '최고위원회'(비밀위원회가 바뀐 것)와 '국무협의회'(1861. 1)의 수정을 거쳐 1861년 2월 19일 황제의 서명을 받아 3월 5일 공포했다.

그 최종안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정부관료와 토지를 가진 귀족들의 계획을 절충한 것이었으나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고, 특히 당사자인 농민계층은 더욱 불만족스러웠다.

해방령에 따르면 농노들은 곧 자유를 얻고 땅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땅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은 복잡하고 느리며 돈이 많이 들었다. 법적으로 땅은 지주들의 것으로 모든 땅을 자세히 조사하여 나눠줄 몫을 계산하고 값을 매길 때까지 농노들은 지주에게 봉사해야만 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융자를 받아 지주에게 땅값을 갚아야 했으며 49년 동안 정부에 '상환금'을 내야 했다. 1881년까지 약 85%의 농민들이 땅을 받았고, 강제로 상환이 이루어졌다. 땅은 농민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상환금을 내는 데 충분할 만큼 적당한 몫으로 나누어졌으나 농노해방령이 발표된 때부터 1905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러시아 인구가 크게 불어났으므로 해방된 농노들은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졌다.

농노해방의 의도는 러시아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결점, 즉 농노제가 농민들에게 안겨준 후진성과 가난을 치유하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농이라는 중요한 계급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농민은 가난했고 막대한 상환금에 짓눌리고 있었다. 정부는 1905년 혁명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상환금을 없애주었으나 그때는 농민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농노해방의 의도가 더이상 성취될 수 없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