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2세

데이비드 2세

다른 표기 언어 David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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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324. 3. 5, 스코틀랜드 파이프 던펌린
사망 1371. 2. 22, 에든버러
국적 영국, 스코틀랜드

요약 스코틀랜드의 왕.

1329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망명지와 감옥에서 18년을 보냈다.

종종 잉글랜드와 전쟁(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일부)을 했으며 그가 다스릴 때 스코틀랜드에서는 왕권이 쇠퇴하고 귀족의 권력이 커졌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맺은 노샘프턴 평화조약에 따라 4세 때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여동생 조애나와 결혼했다(1328. 7. 17). 1329년 6월 7일 아버지 로버트 1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다. 1332년부터 섭정을 맡은 아치볼드 더글러스 경이 노섬벌랜드에 있는 핼리던힐 전투(1333. 7. 19)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패배하자 에드워드 3세의 봉신이며 스코틀랜드 왕위 요구자였던 에드워드 드 베일리얼이 사실상의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다. 데이비드는 1334년 프랑스에 망명해 필리프 6세에게서 관대한 보호를 받았으며 1339년과 1340년에는 필리프 왕이 에드워드 3세와 싸운 성과없는 전투에 참가했다.

1341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갔지만 잉글랜드를 쓸데없이 공격한 것 외에는 왕 노릇을 거의 못했다. 잉글랜드가 점령한 칼레를 프랑스군이 포위했을 때 그는 필리프 6세 편에 서서 견제공격을 했으나 더럼 주 네빌스크로스에서 패배해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1346. 10. 17).

잉글랜드에 붙잡혀 있다가 몸값을 약속하고 1357년에 풀려났으나 몸값은 스코틀랜드 정부가 지불할 수 없는 큰 액수였다. 에드워드 3세에게 승복하는 입장이 된 그는 1363년 몸값을 면제해주면 스코틀랜드 왕위를 잉글랜드 왕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거부당했고 합법적 후계자였던 그의 조카(후에 로버트 2세가 됨)와는 적이 되었다.

말년에는 재정을 낭비해 더 큰 반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