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융기문토기, 隆起紋土器

요약 신석기시대에 사용한 토기의 하나.

융기문토기(隆起紋土器)라고도 한다. 덧무늬토기는 토기를 만든 다음 그 기벽 위에 또다시 흙띠를 덧붙여 돋아오르게 한 것을 말한다. 토기의 바탕흙살을 세게 눌러서 돋아올라 보이게 하는 경우도 덧무늬토기에 넣자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무늬를 베푸는 과정에서 나타난 효과이며 덧붙인 것은 아니므로 덧무늬토기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전통적인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베푸는 방법, 즉 새기거나 찍는 방법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무늬로 다루어져왔다. 덧무늬토기는 일찍이 1930년대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알려졌고 8·15 해방 후 북한이 평양 금탄리, 웅기 서포항 등의 신석기유적을 발굴하는 가운데 찾아졌으나, 가장 널리 알려지기로는 부산 동삼동 유적을 발굴하면서부터이다. 덧무늬토기는 이곳의 빗살무늬토기층보다 앞서는 가장 아래층에서 무늬없는 토기들과 함께 발굴되었으며,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토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최근에는 양양 오산리유적에서 덧무늬토기가 드러나 이곳이 함경북도지역과 남해안지역을 잇는 점이지대라는 점으로 주목받았고, 단양 상시 등의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찾아졌다. 그밖에 덧무늬토기는 전라남도 해안으로부터 경상남도 해안까지의 남해안 전지역(흑산도, 여천 송도, 상노대도, 연대도, 영선동, 다대동 등)과 거창 임불리 등 경상남도 내륙지방, 제주도 고산리 등지에서도 출토되었다. 이를 종합해볼 때 덧무늬토기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토기로서 남해안지역에서 가장 성행했으며, 전국 각지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 썼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덧무늬는 신석기 이른 시기뿐만 아니라 신석기 늦은 시기에서 청동기 이른 시기에 걸치는 민무늬토기에도 베풀어졌는데 이때의 덧무늬는 대개 굵은 편이다. 용천 신암리, 시중 심귀리, 의주 미송리, 제원 황석리 유적 등에서 나온 토기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덧무늬토기들과 이들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