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피어

댐피어

다른 표기 언어 William Dampier
요약 테이블
출생 잉글랜드 서머싯 이스트코커, 1651. 8
사망 1715. 3,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모험가.

원래는 해적이었지만 나중에 영국 해군성을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뉴브리튼 섬의 일부 해안을 탐험했다. 자연현상을 날카롭게 관찰할 줄 알았던 그는 몇 가지 점에서 과학적 탐험의 선구자였다. 16세에 고아가 된 그는 뉴펀들랜드를 항해한 후에 동인도와 멕시코 만을 항해했다. 1678~91년까지 주로 남아메리카의 서해안과 태평양에서 해적질을 했다.

1688년 항해 도중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는데 그 지점은 멜빌 섬 근처의 북쪽 해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곳에서 약탈할 물건을 전혀 찾아내지 못했고, 그곳의 원주민과 그들의 관습에 혐오감을 느꼈다.

10년 뒤 영국 해군부를 위해 '로우벅' 탐험호의 선장으로 임명될 때까지의 10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699년 1월 14일 그는 영국을 떠나 희망봉을 돌아서 7월 26일에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샤크 만에 도착했다. 그는 해안을 탐험하면서 북쪽으로 올라가 나중에 댐피어 군도라고 부르게 된 곳에 도착한 뒤, 계속해서 뉴기니로 항해했다. 그는 뉴기니 섬의 북쪽을 돌아 뉴브리튼 섬에 도착했다.

배는 낡고 선원들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보충하기 위하여 자바 섬의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항해를 계속했다. 1700년 10월 17일에 영국으로 뱃머리를 돌렸지만, 2월 22일에 대서양 남부의 어센션 섬 근처에 다다랐을 쯤에는 '로우벅호'에 물이 새어들어와 침몰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은 4월 3일까지 어센션 섬에 발이 묶여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동인도 사람들로 이루어진 호송선단에 구조되었다.

댐피어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민간무장선 선장이 되어 2차례 항해했으며, 2번째 모험에서 약 20만 파운드에 상당하는 전리품을 얻었다. 그가 1697년 출판한 〈새로운 세계일주 항해 A New Voyage Round the World〉는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가 태풍을 관찰한 항해일지는 유럽인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