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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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에서 발행되는 종합일간신문(→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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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후신으로 1945년 11월 23일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오세창(吳世昌), 주필은 이관구(李寬求), 편집국장은 홍기문(洪起文)이었다. 1949년 6월 1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정부가 갖고 있는 주식이 48.8%임을 밝혔다. 같은 해 5월 3일 북한에서 일어난 동해주 반공사건에 관한 기사가 문제되어 공보처로부터 발행정지를 당했다가 6월 20일 속간, 이때부터 공보처의 감독을 받는 정부의 기관지가 되었다.

같은 해 8월 15일부터 조석간으로 4면을 발행한 뒤, 6·25전쟁 때 잠시 휴간했다가 1951년 4월 10일부터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서울에서 타블로이드판 2면을 발행했다. 이는 당시 서울에서 발행되는 단 하나의 신문으로, 피난가지 못한 서울 시민에게 전황을 신속하게 알려 주었다. 1955년 1월부터 3월 31일까지 조석간 2면을 발행했고, 1956년 10월 18일부터 한글판 〈서울신문〉을 따로 발행했다. 그러나 한글판 신문은 국한문 기사를 한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1년 뒤 휴간되었다. 1958년 10월 1일부터 조석간 6면을 발행했고, 1959년 3월 23일에는 그때까지 〈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어왔던 것을 그만두고, 한글판 〈서울신문〉을 창간했던 날부터 지령을 다시 계산해서 실었다. 1960년 4·19혁명 때 시위군중에 의해 인쇄시설이 망가지고 중요한 자료도 불에 타버려 잠시 휴간했다. 그 해 6월 27일 오종식이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를 일으키려고 애썼지만, 심한 재정난으로 이듬해 5월 9일부터 12월 21일까지 휴간했다. 1961년 제3공화국의 지지를 받아 12월 22일부터 과감하게 한글 전용을 시도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국한문 혼용으로 바꾸었다. 1980년 12월 2일부터 이전의 석간에서 조간으로 바꾸었고, 1981년 1월 4일부터 하루 12면을 발행했다. 1985년 4월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31번지 지하 4층, 지상 22층의 프레스 센터로 이사했다. 특별행사로는 농어촌청소년대상·신춘문예 등과 여러 가지 스포츠·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자매지로 시사인물평론 주간지 〈뉴스피플〉과 일간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서울〉이 있었으나, 이 중 〈스포츠 서울〉은 1999년 12월에 스포츠서울21로 분사했다. 1998년 11월 신문의 제호를 〈대한매일〉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