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버넌트

대버넌트

다른 표기 언어 Sir William Da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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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06, 옥스퍼드
사망 1668. 4. 7,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시인, 극작가, 극장 매니저.
D'avenant라고도 씀.

희극 〈위츠 The Witts〉(1634 공연허가), 가면극 〈사랑의 신전 The Temple of Love〉·〈승리한 브리타니아 Britannia Triumphans〉·〈루미날리아 Luminalia〉와 시집 〈마다가스카르 Madagascar〉(1638) 등의 성공에 힘입어 계관시인이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대버넌트의 대부였던 것이 분명하며, 친아버지라는 소문도 있었다. 대버넌트는 1622년 런던에서 궁정 시종으로 일했으며 그뒤 유명한 궁정문관인 브루크 경(卿) 폴크 그리빌을 섬겼다. 이때 비극적 복수를 주제로 한 〈알보빈 Albovine〉(1629경 공연)을 비롯해 희비극 〈대령 The Colonel〉 등을 썼다.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한 뒤 그의 매력적이고 거침없는 성격과 희곡 및 운문들이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관심을 끌게 되어 후원을 얻었다. 벤 존슨이 죽은 이듬해인 1638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대버넌트는 실패로 돌아간 군사적 음모 때문에 1641년 목숨을 잃을 뻔했고, 1642년 청교도혁명이 일어나자 극장건립을 위해 얻어낸 왕실 특허권이 쓸모없게 되었다. 청교도혁명 때 찰스 1세를 지지하여 영국해협을 건너 보급품을 조달한 공로로 1643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그뒤 몰락한 스튜어트 왕가를 따라 파리에 망명하면서 그는 1,700연에 이르는 4행시 형식의 기사도 무용담인 미완성 서사시 〈곤디버트 Gondibert〉(1651)를 쓰기 시작했다.

찰스 1세가 처형당한 뒤 헨리에타 마리아 왕비는 왕당파를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 메릴랜드 부총독의 자격으로 그를 아메리카로 보냈다. 그러나 그가 탄 배는 영국해협에서 나포되었고 그는 1654년까지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크롬웰 치하에서 금지되었던 영국연극을 부활시키기 위한 최초의 시도로서 1656년에 〈첫날의 오락 The first day's Entertainment〉을 〈낭송과 음악 Declamations and Musick〉이라는 제목을 빌려 공연했고 그 성공에 힘입어 영국 최초의 대중 오페라 〈로즈 함락 The Siege of Rhodes Made a Representation by the Art of Prospective in Scenes, And the Story sung in Recitative Musick〉(1656 공연)을 창작했다.

〈로즈 함락〉에서 그는 오페라 형식과 그려진 무대장치, 여성배우 겸 가수 등 3가지 혁신적 요소를 영국의 대중무대에 도입했다.

왕정복고가 되자 1660년 왕실의 특별허가를 얻어 새로운 극단들을 만들고 링컨스 인 필즈(Lincoln's Inn Fields)에 요크 공 극장(the Duke of York's Playhouse)이라는 새 공연장을 세웠다. 극장 매니저이자 연출가·극작가로서 끊임없이 작품을 제작하고 집필·각색했다.

왕실의 허가장은 뒤에 코벤트 가든 극장으로 넘어갔다. 시인 존 드라이든과 함께 1667년 셰익스피어의 〈태풍 The Tempest〉을 각색·공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