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원정

대마도 원정

다른 표기 언어 對馬島遠征

요약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한 일.

대마도 원정은 고려시대 창왕 때와 조선시대 태조 때도 있었지만, 좁은 의미로는 1419년(세종 1) 6월 이종무(李從茂)의 정벌을 말한다.

대마도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 사이의 중개 역할을 맡아왔고, 원래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하여 고려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콩 등의 곡물을 받아갔다. 또 조선왕조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통상의 편의를 봐주는 등 대마도를 우대했다. 그러나 기근이 들 때에는 해적이 되어 해안을 약탈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기도 했다.

1418년(태종 18)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왜구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조선의 비인·해주 해안에 침입했다. 당시 대마도에서는 도주 종정무가 죽고, 아들 종정성이 뒤를 계승한 직후였다. 조선에서는 왜구의 창궐이 대마도 신도주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 하여, 1419년 6월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삼아 삼남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으로 마산포를 출발하여 대마도로 진격했다. 이종무의 대군은 두지포에 상륙, 전도를 수색하여 왜구의 배 127척을 빼앗아 불사르고 왜구를 소탕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그후 이로군에 이르러 수색을 하던 중 좌군절제사 박실(朴實)이 복병을 만나 패했으나 우군절제사 이순몽(李順蒙) 등의 활약으로 왜구를 무찔렀다. 당시 일본은 규슈[九州] 제후를 총동원하여 대마도를 방어케 했으므로 원정군은 전도를 토벌할 수는 없었다. 이에 그해 7월 회군했다. 세종 1년이 기해년이므로 일명 기해동정 혹은 기해정왜역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