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성운동

대각성운동

다른 표기 언어 Great Awakening , 大覺醒運動

요약 주로 1720~40년대 사이에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주들에서 일어난 신앙부흥운동.

이 운동은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 서유럽을 휩쓸고 간 종교운동의 일부로 유럽에서는 개신교도와 로마 가톨릭교도 사이에서 일어난 경건주의·정적주의와 관련이 있고,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1703~91)가 이끈 복음주의와 관련이 있다.

아메리카 식민지 이주자들에게 신세계에서의 일체감과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부여해주었다는 자각을 불어넣어준 초기 대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뉴잉글랜드의 무미건조한 이성주의와 중부 식민주들에 분포해 있던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예배의식에 집착한 형식주의, 그리고 남부의 목회감독 소홀 등에 반대하고 이를 극복하여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계약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것들이 식민주들에서 부흥운동의 터전이 되었다.

부흥운동은 주로 네덜란드 개혁교회, 회중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일부 성공회 등에서 일어났으며 이들 대부분이 주로 칼뱅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대각성운동은 복음주의적 칼뱅주의가 발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부흥설교자들은 죄인에 대한 '율법의 경고', 하느님이 대가없이 베푸는 은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을 강조했다.

이 운동을 이끈 주요인물 가운데는 조지 화이트필드가 있다. 그는 성공회 사제로서 존 웨슬리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칼뱅주의자였다. 1739~40년에 아메리카를 방문하여 여러 식민주를 찾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수용할 만한 교회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들판에서 많은 군중을 상대로 설교했다. 많은 개종자를 얻었으나, 다른 부흥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신앙체험을 비판하고 지나친 감정과 위험한 종교적 망상을 자극하며 교회 성직자들의 정당한 초청을 받지 않은 채 기존의 교구에 함부로 들어와 설교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대각성운동을 이끈 위대한 학자이자 변증가였다.

코네티컷 노샘프턴 회중교회 목사였던 그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움을 얻는다고 설교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신앙체험의 심리적인 면을 재규명하고, 부흥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령의 참된 사역과 거짓 사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가르침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은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보스턴 제일교회 목사 찰스 촌시로, 그는 부흥운동을 지나친 감정 발산으로 간주하여 이를 반대하는 글을 쓰고 설교를 했다.

대각성운동은 식민주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의 흐름을 막았다. 이 결과 교단이 부흥운동 지지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었다. 순회설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한 교회에 속하는 교구체제를 약화시켰다.

부흥운동으로 인디언들에 대한 선교가 촉진되었고, 프린스턴·다트머스·브라운·러트거즈를 포함한 여러 교육기관이 발전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기성 교회로부터 반발이 커지면서 신앙 자유의 분위기가 폭넓게 형성되었고, 종교체험을 자유롭게 하게 됨으로써 여기서 생긴 열정은 미국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에드워즈는 1740년대에 성령이 노샘프턴을 떠났다고 주장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그 시기에 부흥운동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부흥운동은 장로교 내에서 계속되었고, 18세기 내내 감리교와 침례교의 성장과 능력을 키워주는 수단이 되었다. 제2차 대각성운동으로 알려진 부흥운동은 1790년대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대체로 처음의 대각성운동만큼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대학과 신학교들이 세워졌고 선교협회들이 조직되었다.

이 기간 동안 켄터키 주에서도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야영집회 방식의 부흥운동이 발전했으며 19세기 내내 미국 개척지에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