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리

단리

다른 표기 언어 Henry Stewart Lord Darn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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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45. 12. 7, 잉글랜드 요크셔 템플뉴 섬
사망 1567. 2. 9/10, 에든버러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사촌이자 2번째 남편.
Earl of Ross, Duke of Albany라고도 함(1565~67).

영국 왕이 된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의 아버지이며 그뒤를 이어 받은 모든 영국 왕들의 직계선조이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놓고 애런 백작 2세 제임스 해밀턴과 경쟁을 벌였던 레녹스 백작 4세 매튜 스튜어트이며, 어머니는 헨리 7세의 손녀로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 자격이 있는 마거릿 더글러스이다. 마거릿은 아들 단리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도록 하기 위해 또다른 왕위후보자였던 메리 스튜어트와 단리가 결혼하도록 계획했다. 두 남녀는 메리의 첫 남편인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즈 2세가 죽은 직후 프랑스에서 만나 서로 친해졌다.

1565년 2월 잉글랜드에서 살고 있던 단리는 엘리자베스 1세의 허가를 받아 스코틀랜드로 갔다. 4월말 메리와 단리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들리면서 메리는 그에게 로스 백작(과거 스코틀랜드 왕의 아들에게 주던 작위)과 올버니 공작작위를 내렸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여왕과 잉글랜드의 추밀원은 이 결혼이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전갈을 보냈다.

그러나 1565년 7월 29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식에 따라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 일은 존 녹스가 그 대변자로 있는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들을 비롯해 정치적 야심을 키우고 있던 머레이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사생아로 태어난 메리의 이복형제),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노리던 해밀턴 가문을 긴장시켰다. 메리는 차츰 겉으로 드러난 단리의 매력은 적극적인 태도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적극적인 태도도 나중에는 나태하고 거만한 태도로 변해버렸고 밤낮 술에 취해 지내다가 메리의 비서였던 데이비드 리치오를 질투한 나머지 리치오의 암살사건(1566. 3. 9)에 관여하게 되었다. 처음에 단리는 공범자들의 진술을 부인하다가 이들이 단리가 직접 쓴 리치오의 암살에 대한 동의서를 메리에게 제출함에 따라 자신의 혐의를 도저히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메리와 단리에게 아들인 제임스가 태어나면서(1566. 6. 19) 마침내 잉글랜드의 왕위계승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단리는 모두에게 여전히 거북한 존재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에든버러 근처의 커크오필드에 있는 임시 거처에서 메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이 폭파되는 사건이 터졌다.

단리의 시체는 목이 졸린 채로 근처 정원에서 발견되었다. 3개월 뒤 메리는 이 사건을 일으킨 보스월 백작 4세 제임스 헵번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