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트

다비트

다른 표기 언어 Gerard David
요약 테이블
출생 네덜란드 오우데와테르, 1460경
사망 1523. 8. 13, 브뤼주
국적 네덜란드

요약 네덜란드의 화가이며 브뤼주파의 마지막 거장.

다비트는 브뤼주에 가기 전에 하를렘에 살았던 것 같다.

그곳에서 A. 반 오우와테르에게 배우면서 초기의 화풍을 확립했던 것으로 보이며 1484년에는 브뤼주에 있는 성 루가 화가 길드에 가담하여 1501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 브뤼주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Nailed to the Cross〉(1480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예수탄생〉 같은 초기 작품에서 그는 오우와테르와 헤르트헨 토트 신트 얀스로 대표되는 하를렘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뛰어난 채색가로서의 기량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브뤼주에서는 반 에이크 형제와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휘고 반 데르 구스 등의 걸작을 연구했으며 한스 메믈링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는 〈3폭으로 된 성모상 Madonna Triptych〉(1495~98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보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와 천사들〉(독일 다름슈타트)이 있다.

그러나 다비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작품들은 제단장식화로는 〈캄비세스의 심판〉(1498, 2개의 패널)과 브뤼주에 있는 〈그리스도의 세례〉(1502~07경, 3연작화), 〈성인들과 예물증정자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and Donor〉(1505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2폭의 패널로 된 〈수태고지〉(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된 제단장식화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1509, 루앙 보자르 미술관)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원숙한 작품으로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명암과 양감, 공간을 처리하는 장인다운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심판〉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패널들은 푸티(putti:벌거벗거나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의 화상)와 꽃장식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기법을 최초로 플랑드르파 그림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안트웨르펜에서 다비트는 신성한 주제를 좀더 친숙하고 인간적으로 그린 퀘틴 마시스 작품을 보고 그 생명력과 생동감에 감명을 받았다.

다비트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Deposition〉(1515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rucifixion〉(1510~15경, 제노바)는 그러한 영향을 받아 그린 것으로 극적인 생동감이 뛰어나게 표현되어 있다.

다비트의 절충적이고 신중한 고대 화풍에 관해서는 전문가들간에 의견이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브뤼주의 사라져가는 예술을 재생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앞서간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지만 다비트야말로 네덜란드 화풍의 창시자들이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자기혁신을 모색한 진보적인 예술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