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남

노기남

다른 표기 언어 盧基南 동의어 바오로 노기남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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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2, 평남 중화
사망 1984. 6. 25, 경기 의왕
국적 한국

요약 노기남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주교로 10대 서울교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 신품성사를 받고 신부가 되었으며, 지금의 명동성당인 종현성당의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서울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었고, 1942년 12월에 주교서품예식을 거쳐 최초의 한국인 주교가 되었다. 1946년에는 경향신문을 재창간하였고 〈경향잡지〉와 〈가톨릭청년〉을 복간하기도 했다. 6·25전쟁 중에는 군종제도를 발족시켜 가톨릭군종신부단을 창설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신학교와 병원 등 여러 교회기관을 설립하여 천주교의 교세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7년 서울대교구장직을 사임하고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1984년 6월 25일 죽었다.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주교. 10대 서울교구장. 세례명은 바오로. 양친 모두 천주교 신자였으며,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0년 신품성사를 받고 신부가 되었으며, 종현성당(지금의 명동성당)의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했다. 종현본당에서 12년간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계성보통학교(지금의 계성여고)를 설립하여 그곳에서 종교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주교를 모두 일본인으로 바꾸려고 하자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라리보(Larribeau) 주교는 비밀리에 교황청에 노기남 신부를 서울교구장으로 추천하였다.

1942년 1월 교황 비오 12세는 노기남 신부를 서울교구장 서리로 임명하면서 평양과 춘천교구장 서리도 겸임하게 하였다. 같은 해 1월 18일 노기남 신부는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으며, 그해 12월에 주교 성성식을 함으로써 최초의 한국인 주교가 되었다.

1946년 10월에는 경향신문을 재창간하였고 〈경향잡지〉와 〈가톨릭청년〉을 복간하기도 하였다. 6·25전쟁중에는 군종제도를 발족시켜 가톨릭군종신부단을 창설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신학교와 병원 등 여러 교회기관을 설립하여 천주교의 교세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2년 3월 로마교황청은 한국에 교계제도를 설정하고 서울·대구·광주의 3곳을 관구로 설정하였다. 그는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67년 서울대교구장직을 사임하고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1984년 6월 25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