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생

남생

다른 표기 언어 男生 동의어 원덕, 元德, 연남생, 淵男生, 천남생, 泉男生
요약 테이블
출생 634(영류왕 17)
사망 679
국적 고구려, 한국

요약 28세에 막리지에 임명되어 삼군대장군을 겸했다. 연개소문 사후 32세에 대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맡아 여러 성을 순시하면서 아우 남건과 남산을 조정에 머물게 했다. 그때 두 동생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국내성으로 피신했고, 대형 불덕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666년에는 그 아들 헌성을 입조시켰고, 당의 계필하력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향하자 국내성 등 6성과 10여 만 호를 이끌고 투항했다. 668년 사지절요동대도독상주국현도군개국공 식읍 3,000호에 봉해져 당군의 고구려 공격에 합세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다시 우위대장군에 변국공 식읍 3,000호를 더했다. 679년 안동도호부 관사에서 46세로 죽었다.

자는 원덕(元德). 9세에 선인(先人)이 되었고, 15세에 중리소형(中裏小兄)이 되었다.

18세에 중리대형(中裏大兄), 23세에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 24세에 장군을 겸했고, 28세에 막리지에 임명되어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을 겸했다. 연개소문의 사후 32세에 대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맡아 여러 성(城)을 순시하면서 아우 남건남산을 조정에 머물게 했다. 그때 두 동생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여 아들 헌충을 살해하고 왕명을 빌려 소환하자 국내성으로 피신했다. 그는 이곳을 중심으로 오골성(烏骨城)을 치는 한편 대형 불덕(弗德)을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요동성(遼東城:지금의 만주 랴오양[遼陽])으로 군사를 돌렸다가 현도성에 거하면서 다시 대형 염유를 당에 보냈고, 666년에는 그 아들 헌성을 입조시켰다. 당의 계필하력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향하자, 그는 국내성 등 6성과 10여 만 호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고 668년에 사지절요동대도독상주국현도군개국공(使持節遼東大都督上柱國玄菟郡開國公) 식읍(食邑) 3,000호에 봉해져 당군의 고구려 공격에 합세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다시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변국공(卞國公) 식읍 3,000호를 더했다.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676년에 평양성에서 랴오둥 성[遼東省]으로 옮겨진 뒤, 그는 보장왕과 함께 고구려 유민을 안무하기 위해 677년에 안동도호부에 파견되었다. 679년에 안동도호부 관사에서 46세로 죽었다.→ 남건, 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