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

김유성

다른 표기 언어 金有聲 동의어 중옥, 仲玉, 서암, 西巖
요약 테이블
출생 1725(영조 1)
사망 미상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김해. 자는 중옥(仲玉), 호는 서암(西巖). 도화서 화원으로 첨정을 지냈으며, 1763년(영조 39)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한객인상필화 韓客人相筆話〉에 의하면 "그는 골격이 풍만하고 잘생겼으나 병이 있었고, 그의 희망은 부귀를 누리는 것과 득남(得男)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일본 남화(南畵)의 대가인 이케다이[池大雅]로부터 화법에 대한 질문편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세이켄 사[淸見寺] 주지의 요청에 의해 1764년 〈금강산도〉와 〈낙산사도〉를 그려주었는데, 이것은 당시 한일 회화교섭의 실상을 유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작품들이다. 현재 〈화조도〉·〈매조도〉와 함께 4개가 병풍으로 만들어져 일본 세이켄 사에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남종화풍이 유행했는데 같은 화원 출신인 이재관(李在寬:1783~1837)과 함께 화원이면서도 문인화가에 못지않은 높은 격조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전체적인 구도나 수지법에서 남종화풍의 영향이 보이는 일본 개인소장의 〈산수도〉는 김유성의 남종화에 대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밖에 〈사계산수도 四季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