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드 생 아무르

기욤 드 생 아무르

다른 표기 언어 Guillaume de Saint-Amour
요약 테이블
출생 1200경, 아를 왕국 생타무르
사망 1272. 9, 생타무르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철학자·신학자.
(영). William of Saint-Amour.

파리대학에서 13세기에 새로 설립된 탁발수도회들의 발흥을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후원자인 사보이 백작의 재정 지원을 받아 파리대학에서 교회법과 신학에 관한 박사과정의 연구를 했으며, 1250년경 신학부 주임교수로 선정되었다. 이 주임교수로 재직할 동안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인 〈분석론 전편과 후편 De Analytica priora et posteriora〉에 관한 주요한 주석서를 썼다.

탁발수도회를 경멸하여 그들의 대표자와 대학에 적을 둔 신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보나벤투라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격했다. 기욤의 사주를 받아 대학 당국은 1254년 겨울에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교수들을 정직시켰다. 기욤은 1254년 7월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파리대학에 각 수도회 출신의 교수를 1명으로 제한하는 교령을 얻어내기도 했다. 같은해 11월 교황은 성사의 집전에서 수도회가 갖는 특권을 폐지했다.

그러나 다음달에 새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알렉산데르 4세는 이러한 제한을 철폐하고 파리대학의 교수들에게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을 대학에 다시 받아들일 것을 명령했다. 기욤은 이러한 결정을 거부했고 탁발수도회의 목적을 피오레의 조아키노가 가르친 묵시론과 결부시킴으로써 탁발수도회의 적법성 자체를 문제삼고 나섰다. 탁발수사들을 매도할 목적으로, 기욤은 정치적·교권적 체제가 일소될 새로운 신권정치 시대에 관한 조아키노의 예언을 논박했다.

1255년 기욤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대행자들의 책 Liber de Antichristo et ejusdem ministris〉을 집필하여,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이 대재앙이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시대의 선구자들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문제를 조사한 후 교황 알렉산데르는 1256년 6월에 일체의 대학교수직과 교회직책에서 기욤을 자격정지 처분하고 그를 프랑스에서 추방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프랑스의 주교들이 그의 글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치겠다는 약속을 끌어내어 그의 사건을 재심리한 후, 1256년 9월에 기욤은 파리대학의 다른 교수들과 공동집필이라는 명목을 빌어 탁발수도회를 탄핵하는 〈최근의 위험들에 관해서 De periculis novissimorum temporum〉를 발간했다.

1256년 10월에 이 책 역시 교황 알렉산데르에 의해 정죄받은 뒤, 기욤은 1257년초 변론서를 제출했지만 다시 오류를 범했다는 판결을 받고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교황 클레멘스 4세에게 탄원하여 1266년 프랑스로 돌아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생타무르에 있는 자택에 칩거했다. 수도회와 논쟁을 계속하는 것이 교황에 의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욤은 파리대학의 동료들과 서신왕래를 계속했고, 그의 동료들은 그후 논쟁을 재개했다. 생타무르의 기욤 전집은 1632년에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