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불감

금동불감

다른 표기 언어 金銅佛龕

요약 동판을 조립하거나 동으로 주조하여 감(龕)을 만들고 도금한 것으로 대개 안에는 따로 만든 불상을 봉안한 것.

목차

접기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불감
  2. 포그 미술관 소장 금동불감

용도는 대체로 개인용 염지불(念持佛)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금동불감으로는 고려 초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불감,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제작된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금동불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불감, 미국 하버드대학교 포그 미술관 소장 금동불감, 수종사탑(水種寺塔) 출토 금동불감 등이 있다.

이 불감들은 우리나라에 전하는 또다른 유형의 불감인 이른바 포탄형 불감이라 불리는 송광사 소장 목조불감이나 조선시대 목조불감들과 달리 대체로 기와지붕을 얹은 목조전각형을 취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불감은 주조된 것이며, 고려 말기 이후의 작품들은 동판을 조립하여 만든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인 간송미술관 불감은 그 구조나 형식의 발상 자체가 이전시대의 전각형 금동사리기들과도 연결되며, 고려 말기의 불감에서는 안팎에 각종 도상이나 건축 문양을 부조하여 축소된 전각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금동불감들 외에 상형(箱形) 옥개를 얹은 유사한 형식의 예로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의 제작으로 추정되는 고봉국사주자원불(高峰國師廚子願佛)이라 불리는 송광사 소장 금동불감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불감

높이 26㎝, 밑면 가로 25㎝, 세로 12.5㎝. 원래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 소장품이었으며 개성 근처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2장의 동판을 못으로 박아 벽을 만들고 그위에 지붕을 얹은 전각형 감의 정면에 문을 달았으며 기단부는 연화대좌처럼 앙련(仰蓮)과 복련이 상하대칭으로 둘러졌다. 안에 봉안되었던 불상은 없어졌으며 우진각지붕에는 푸른색을 칠했고 용마루 양끝에 치미가 작게 솟아 있다.

문짝의 표면에는 윗부분에 사격자문(斜格子門)을 모방한 연능 무늬[連菱紋]를, 아랫부분에 꽃 무늬를, 기둥부분에는 연당초 무늬를 음각했다. 두 문짝의 안쪽 면에는 타출법으로 인왕상을 1구씩 양각했는데 분노형으로 두 발은 연꽃을 밟고 금강저를 들고 권법의 자세로 서 있으며 불꽃 무늬가 새겨진 두광이 독특하다. 이러한 인왕상표현은 고려시대 사경표지의 신장상, 경복궁에 있는 14세기 중엽의 경천사10층석탑에 부조된 신장상 등과 닮았다.

감 내부에는 여러 도상들을 타출기법으로 도드라지게 부조했는데 정면벽에는 화형의 윤곽을 지닌 3단 대좌에 앉아 있는 불·보살삼존과 10구의 나한상을 구름을 배경으로 표현했다.

신광(身光)에 방사선이 음각된 본존상은 설법자세이다. 이러한 전체 도상은 석가불의 영축산 설법을 도해한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묘법연화경변상도와 같고 불보살의 옷모습이나 대좌형태 등 세부묘사는 모두 14세기 고려불화나 사경변상도의 표현을 따르고 있다. 불감 내부 왼쪽 벽에는 코끼리의 등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경책을 받쳐든 보현보살이, 오른쪽 벽에는 사자를 타고 앉아 여의를 받쳐든 문수보살이 양각되었으며 두 보살상의 얼굴모습이나 옷입은 모습은 정면벽의 상들과 같고 역시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감 내부 벽면의 도상으로 보아 없어진 불상은 석가불로 추측된다.

감의 천장에는 선각된 연당초 무늬 중앙에 오목한 능화형을 만들고 그안에 용 1마리를 양각했는데 이것은 고려말 사찰의 천장장식을 모방한 것이다. 불감의 바깥쪽 좌우 벽면에는 갑옷을 입고 원형두광이 표시된 사천왕상이 2구씩 선각되었는데, 왼쪽 벽의 상들은 탑과 비파를 각각 들고, 오른쪽 벽에는 검을 든 상과 합장한 상이 배치되었다. 그중에서 비파를 든 상은 원(元)의 사천왕상에 보이는 도상으로서 주목된다.

뒷벽에는 연당초 무늬와 함께 도상적으로 확실치 않지만 팔부중으로 보이는 신장상 8구가 선각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하의만 입고 천의를 걸쳤으며 검이나 탑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이 불감은 실제 전각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식의장과 다양한 도상이 부조되어 있어서 건축의장이나 불화·불상조각·공예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제작시기는 1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불감과 비슷한 구조와 도상배치, 제작법을 보여주는 불감이 전라남도 구례 천은사(泉隱寺)에 있다.

포그 미술관 소장 금동불감

전체높이 24.0㎝, 폭 22.0㎝, 깊이 11.2㎝. 동판으로 조립하여 도금한 상자형의 불감으로 이제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불감 정면에 2짝의 여닫이문을 달고 안에 불상을 봉안했다. 불감 내부의 뒷벽에는 타출법으로 후불벽화를 대신하는 군상을 부조했다.

문 표면에는 사격자문(斜格子門)을 모방한 문양과 꽃 무늬를 새기고, 문의 안쪽면에는 타출법으로 인왕상을 1구씩 부조했으며 인왕의 위에는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불화에 그려진 진기한 꽃과 산호초 등을 연상케 하는 식물 무늬를 부조하여 장식했다.

불감 내부에는 원래 불좌상과 보살입상 2구가 봉안되어 있었는데, 불좌상은 현재 없어졌으며 오래된 사진에 의하면 앙련·복련의 연접된 대좌에 결가부좌하 여 아미타구품인 중 하품하생인을 취하고 있는 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좌상은 신체비례나 도식화된 옷주름표현, 장식적인 대좌의 형식 등으로 보아 고려 말기 이후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보살상은 본존의 대좌와 같은 앙·복련이 연접된 형식의 대좌에 서 있으며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손 모양은 시무외·여원인에 가까운데 좌우협시가 대칭으로 표현되었으며, 옷주름은 두텁고 무겁게 조각되었다.

내부 정면벽에는 설법인의 불조상과 허공 중에 옷자락을 날리며 서 있는 듯한 보살상이 좌우 4구씩 부조되어 아미타구존도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본존의 머리 위에는 천궁(天宮)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2구의 비천이 표현되었는데, 타출법에 의한 묘사가 정교하지 못하고 전체구성도 엉성한 편이다. 이 불감은 형식으로 보아 고려말 14세기의 지리산 천은사 금동불감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불감과 같은 전각형불감인데 지붕이나 대좌가 생략되어 구조가 단순해졌으며 그대신 정상부에 손잡이가 부착되어 휴대용의 성격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