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독립전쟁

그리스 독립전쟁

다른 표기 언어 War of Greek Independence

요약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그리스인들이 일으킨 전쟁(1821~32).

이 전쟁 뒤에 독립 그리스 왕국이 탄생했다. 이 저항운동은 1814년 오데사에서 결성한 애국비밀결사인 '필리키 에타이레이아'(Philikí Etaireía:우호형제단)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모든 그리스 사람들은 독립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스 정교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그리스 언어, 억압적인 오스만 제국의 행정제도는 오랫동안 그리스 민족주의, 즉 헬레니즘을 조장시켰고 경제발전과 유럽 혁명의 충격은 헬레니즘을 더욱 강화시켰다. 전쟁은 1821년 3월 에타이레이아의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가 소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프루트 강을 건너 투르크 점령지인 몰다비아로 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입실란티스는 곧 패배했지만, 1821년 3월 25일(이날이 그리스 독립기념일이 됨)에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코린토스 만(灣) 북부 및 여러 섬에서 투르크 통치에 대한 저항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1년 내에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장악한 그리스인들은 1822년 1월 독립을 선언했다. 투르크인들은 3차례에 걸쳐(1822~24) 펠로폰네소스를 침입했지만 탈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독립군은 내부분열로 펠로폰네소스에서 세력을 넓히거나 위치를 강화하지 못했다.

게릴라 지도자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와 1822년 1월에 수립한 정부수반인 게오르기오스 쿤투리오티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고(1823), 그해 12월 쿤투리오티스는 히드라 섬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내전(1824) 뒤 쿤투리오티스는 지도자로서 지위를 굳혔으나 이브라힘 파샤가 이끄는 이집트군이 투르크를 도우려 도착하자(1825) 그의 정부와 모든 혁명은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투르크군은 이집트 해군의 도움으로 펠로폰네소스를 침공하는 데 성공하고 더 나아가 미솔롱기(1826. 4), 아테네 시가지(1826. 8),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1827. 6)를 점령했다.

그러나 유럽 열강의 간섭으로 그리스인들의 대의명분이 지켜지게 되었다. 이들이 그리스 자치국가 수립에 찬성해 투르크와 그리스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제의했으나(1826, 1827) 투르크가 이를 거절하자 영국·프랑스·러시아는 나바리노에 해군함대를 보내 1827년 10월 20일 이집트 함대를 격파했다. 이 사건으로 오스만 병력이 큰 타격을 받았으나 전쟁은 계속되었고 러시아-투르크 전쟁(1828~29)으로 더 복잡하게 발전했다.

유럽 열강들은 런던에서 회의를 열어 그리스가 열강의 보호를 받는 독립 입헌군주국임을 선언하는 런던 의정서를 채택함으로써(1830. 2. 3) 마침내 그리스-투르크 문제가 해결되었다. 1832년 중반에는 볼로스 남쪽에서 아르트 남쪽에 이르는 새 그리스의 북쪽 경계선이 정해졌고 바이에른의 오토 왕자가 왕위를 수락했으며 투르크의 술탄은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했다(콘스탄티노플 조약:183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