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교수

다른 표기 언어 teaching , 敎授

요약 교수행위는 활동의 주체인 교사와 대상이 되는 학생, 활동의 목적인 교육내용 등 3요소로 이루어진다. 학습에 대한 목적의식이 결여된 교사의 행위는 교수일 수 없으며, 교사나 학생이 그들 활동의 의미를 상호간에 인식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의 행사는 교수로서 부적절하다. 교수는 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활동이긴 하지만 교수의 의미 속에 논리적으로 교육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비판되어야 할 교수행위의 일종으로 위교가 있다. 위교는 대체로 "권위주의적 방법을 동원하여 학습자로 하여금 장차의 경험에 의해 변화되기 힘든 신념과 태도를 형성"시키는 교수의 한 형태로 이해되고 있다. 위교는 교육의 규범적 의미범주에 포함하기 힘든 그릇된 교수형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접기
  1. 교수이론
  2. 교수모형
교수
교수

교수의 의미를 지식의 전달 위주로 파악할 때 '교수'의 영어는 'instruction'이 주로 쓰이나, 교육받은 인간의 폭넓은 경험과 성장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teaching'이라는 영어가 보편화되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수업'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대체로 수업은 교수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상태로 교수의 좁은 의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수행위는 활동의 주체인 교사와 대상이 되는 학생, 활동의 목적인 교육내용 등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영국의 교육철학자 T. W. 모어는 교수의 개념을 다음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교수는 누군가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포함된 행위이며, 둘째로 교수에는 교사와 학생 양자가 그들 활동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사의 편에서는 학생의 학습을 위한 교육적 책임의식을, 학생의 편에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기의식을 가질 때 교수는 성립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학습에 대한 목적의식이 결여된 교사의 행위는 교수일 수 없으며, 교사나 학생이 그들 활동의 의미를 상호간에 인식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의 행사는 교수로서 부적절하다.

교수는 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활동이긴 하지만 교수의 의미 속에 논리적으로 교육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이는 '교수'의 의미와 '성공한 교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교육적 의미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거나 교육적으로 실패한 경우에도 교수는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닐 수 있되 다만 교육적으로 수용되기에는 적절치 않은 교수라고 할 수 있다.

교수의 개념에 비춰 보아 비판되어야 할 교수행위의 일종으로 위교가 있다. 위교에 대한 철학자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지만 대체로 "권위주의적 방법을 동원하여 학습자로 하여금 장차의 경험에 의해 변화되기 힘든 신념과 태도를 형성"시키는 교수의 한 형태로 이해되고 있다. 방법에 초점을 두고 덧붙여 설명하자면, 위교는 학습자의 합리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형태로 진행되는 전달과정이다.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위교는 의문시되는 신념을 의문의 여지없는 진리인 것처럼 교수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위교는 교육의 규범적 의미범주에 포함하기 힘든 그릇된 교수형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이론

교육과정이론이 일차적으로 교육내용의 선정과 관계된 분야라면 교수이론은 교육방법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 교육방법에 관한 학문적 관심의 시작은 J. F. 헤르바르트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교수단계를 '명료화 → 연합 → 계통화 → 응용'의 4단계로 구분하고 이런 단계에 따라 교수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헤르바르트의 4단계이론은 T. 칠러, W. 라인을 거치면서 6단계이론으로 수정되어 교수방법에 관한 고전적 이론으로 여겨져왔다. 이들 헤르바르트학파의 교수단계이론은 종래의 교과중심 교육과정에 보다 적절한 교수방법으로 인식되어왔는데 교육과정이론의 변천과 더불어 교수방법도 달리 추구되었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주류로 대두된 20세기 초반 미국의 교육계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교수방법으로 구안법이 제시되었다. 이 교수법은 수업의 단계를 목표설정·계획수립·수행·평가의 4단계로 설정하고 있으며, 실습이나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경험에 적절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최근 들어 행동주의 심리학과 교육의 과학화 경향에 부응하여 R. 글래이저의 수업모형(수업목표→출발점 행동→수업절차→평가)이 주목을 받았다.

글래이저의 수업모형은 교수행위의 매단계에서 끊임없는 상호환류(feed-back)를 통한 진단과 수정을 특징으로 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교육적 적용의 또 한 예는 교수기계(teaching machine)에 의한 프로그램 학습(programmed instruction) 개념의 성립이다. 20세기 중반 이런 교수방법의 개념이 대두되었을 때 현실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의문시되었으나 최근에는 가정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의 대중화와 함께 프로그램 학습의 가능성은 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교수모형

교수방법의 유형은 교사와 학생 간의 주도권 배분, 교사의 지시 정도에 따라 설명식 수업과 발견학습으로 대별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이 두 모형의 차이가 수업에서의 교사역할의 비중에 있는 것 같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관의 차이, 나아가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지식의 성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간에 대한 기계론적 접근 방식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거래(transaction)가 주된 관계이다.

교사는 권위자이고 지식의 보고이고 전문가인 반면, 학생은 그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교사의 적극적인 활동과 학생의 수용적 자세가 요구된다. 반면 유기체론적 접근 방식에 의하면 학생의 자발적인 탐구와 경험이 강조되고 그만큼 교사는 학생의 학습과정을 도와주는 보조 위치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가르쳐야 할 지식의 성격을 '사실'로 보느냐 '원리'로 보느냐에 따라 교수모형이 달라지게 된다.

이홍우에 의하면, 지식교육을 '사실을 일러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교사의 직접 전달이 주를 이루게 되고, '원리를 보도록 하는 일'로 이해하게 되면 교사의 간접 전달과 학생 나름의 깨달음이 요구되게 된다. 칸트는 인식의 성격을 두고 "경험이 빠진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빠진 경험은 무질서하다"고 했다. 사실과 원리의 경우에도 위의 경험과 개념의 상호 유기적 관련성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수준과 학습자의 발달심리학적 특징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적으로 일러주기만 하는 교수나 보도록 하는 교수는 사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아가서 언제나 보편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교수모형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나라 교육의 질, 특히 교사자질과 자율성의 정도, 교육환경의 적절성 여부, 대상 학생의 지적 성숙도와 교육적 기대 등에 따라서 교수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