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제

광무제

다른 표기 언어 Kuangwu , 光武帝 동의어 후한 제 1대 황제, 한 세조 광무황제 유수, 漢 世祖 光武皇帝 劉秀
요약 테이블
출생 BC 4, 중국 뤄양[洛陽]
사망 AD 57, 뤄양
국적 후한(後漢), 중국

요약 그가 재건한 왕조를 후한 또는 동한(25~220)이라고 한다. 광무제는 황실 유씨 가문의 일원으로, 한조의 창시자인 고조(BC 206~195 재위)의 후예로 추정된다.
22년 왕망의 급진적인 개혁조치로 신나라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게 되자, 그는 곧 군대를 일으켰고 강력한 유씨 문중과 다른 부유한 호족가문들의 지원을 받아 23년에 왕망을 격파했다. 2년 뒤에 수도를 중국 동부에 있는 자신의 고향 뤄양으로 옮기고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했다. 동한이라는 이름은 이같이 수도를 동쪽으로 천도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뒤 10년간 통치권을 강화하고 적미의 난을 비롯한 많은 국내반란을 진압했다. 또한 중국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유목민족을 진압했고, 중국 남부 변방지역에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되찾았다. 제국에 평화가 회복되자, 그는 전쟁에 지쳐서 전쟁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

광무제(光武帝)
광무제(光武帝)

이름은 유수(劉秀), 묘호는 세조(世祖). 그가 재건한 왕조를 후한 또는 동한(東漢:25~220)이라고 한다.

광무제는 황실 유(劉)씨 가문의 일원으로, 한조의 창시자인 고조(高祖:BC 206~195 재위)의 후예로 추정된다. 22년 왕망의 급진적인 개혁조치로 신나라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게 되자, 그는 곧 군대를 일으켰고 강력한 유씨 문중과 다른 부유한 호족가문들의 지원을 받아 23년에 왕망을 격파했다. 2년 뒤에 수도를 중국 동부에 있는 자신의 고향 뤄양으로 옮기고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했다.

동한이라는 이름은 이같이 수도를 동쪽으로 천도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뒤 10년간 통치권을 강화하고 적미(赤眉)의 난을 비롯한 많은 국내반란을 진압했다. 또한 중국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유목민족을 진압했고, 중국 남부 변방지역에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되찾았다. 제국에 평화가 회복되자, 그는 전쟁에 지쳐서 전쟁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

후한이 전한만큼 강력해진 적은 없지만, 후한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전쟁으로 인해 방대한 면적의 면세토지가 대부분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전한 말기에 고통을 주었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면세토지 문제가 제거되었다. 그러나 그는 몇몇 호족가문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일으켰고 계속해서 그들의 군사적인 지원에 의존했다. 그결과 이 가문들은 중앙정부의 재정을 축내면서 자신들의 소유지를 점차로 늘려갔고, 제국은 호족연합체처럼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