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가

공무도하가

다른 표기 언어 公無渡河歌

요약 작자에 대해서는 백수광부의 아내라는 것이 통설이다. 노래의 원래 모습은 알 수 없고 한역가만이 전하고 있다. 창작지역·채록자·문헌 등이 모두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노래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낙랑군의 조선현이 있었던 대동강 나루나 우리 민족과 관련된 어느 나루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우리 노래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처음 문헌에 기록된 것은 16세기말 또는 17세기 초의 저작으로 보이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초고〉에서이다. 18세기 이후 박지원의 〈열하일기〉, 한치윤의 〈해동역사〉 등에 실려 전하게 되었다. 노래의 전문은 2세기 후반 중국에서 편찬된 채옹의 〈금조〉에 실려 있으며 그 가사는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이 결국 물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이다.

작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라는 것이 통설이다. 노래의 원모습은 알 수 없고 한역가만이 전하고 있다. 창작지역·채록자·문헌 등이 모두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노래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낙랑군(樂浪郡)의 조선현(朝鮮縣)이 있었던 대동강 나루나 우리 민족과 관련된 어느 나루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우리 노래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 노래에 대한 기록이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16세기말 또는 17세기 초의 저작으로 보이는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초고 五山說林草藁〉에서이다. 18세기 이후에는 여러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이형상(李衡祥)의 〈지령록 芝嶺錄〉,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유득공(柳得恭)의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 한치윤의 〈해동역사 海東繹史〉 등에 실려 전하게 되었다.

설화의 내용을 살펴 보면 조선진졸(朝鮮津卒)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배를 닦고 있는데, 머리를 늘어뜨리고 호리병을 찬 백수광부 하나가 강을 건너려 했다. 그 아내가 좇아갔으나 광부는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한탄하던 그 아내는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뒤 자신도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아내 여옥(麗玉)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옥은 공후를 타며 그 노래를 불러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 노래의 전문은 2세기 후반 중국에서 편찬된 채옹(蔡邕)의 〈금조 琴操〉에 실려 있으며 그 가사는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이 결국 물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이다. 문헌에 따라서 2번째 구의 '竟'이 '終'으로, 3번째 구의 '公墮'가 '墮河' 또는 '公'으로, 4번째 구의 '當'이 '將'으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