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고은

다른 표기 언어 高銀 동의어 고은태, 髙銀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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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3. 4. 11, 전북 군산
국적 한국

요약 시인. 1970년대 민족민주운동에 앞장섰으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간사, 민주청년협의회 고문,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부회장 등을 지내고 여러 재야단체와 집회에 참가하면서 주로 사회비판의식이 담긴 시를 썼다. 대표작으로 <아침이슬>, <만인보> 등이 있다. 2014년 세계적인 권위의 스투르가 시 축제에서 황금화관상을 받았다.

고은(高銀)
고은(高銀)

시인. 본명은 은태(銀泰), 법명은 일초(一超). 1933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아버지 근식(根植)과 어머니 최점례(崔點禮)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9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43년 미룡국민학교에 들어가 조기졸업하고 1946년 군산중학교에 수석 입학해 미술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6·25전쟁 때 3개월 동안 강제동원되어 비행장 복구작업을 한 뒤 자주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출했다.

1·4후퇴 때 선유도로 피난했다가 군산으로 돌아와 군산북중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그뒤 방황을 거듭하다가 1952년 불가에 들어가 탁발하는 등 많은 기행을 남겼는데, 10여 년간 가짜 고은이 전국 여러 곳에서 나올 지경이었다.

1962년 환속해 폭음과 방랑을 계속하다가 제주도에서 도서관을 설치하고 고등공민학교를 여는 등 사회봉사활동을 했다. 서울 선학원(禪學院)·불교 총무원 간부, 전등사 주지, 해인사 주지대리 등을 지냈다. 1969년 동화통신 부장대우로 잠시 근무한 것이 유일한 직장 경험이다.

1974년부터 민족민주운동에 앞장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간사, 김지하구출위원회 부위원장 등 여러 운동단체에 참여했다. 1977년 조태일과 함께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민주청년협의회 고문,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79년 6월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했다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투옥되어 10·26사태를 감옥에서 맞이했다.

1979년말 석방되었으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투옥,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 귀 수술을 받았다. 1982년 건강이 악화되어 8·15 특사로 풀려났다. 2001년 세계한민족문학작가연합 회장, 2004년 제4회 베를린 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을 지냈다. 2008년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되었고, 2010년에는 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만인보>, <독도>, <허공>이 있으며, 소설 <화엄경>을 썼다. 수상 경력으로는 2002년 은관문화훈장, 2005년 노르웨이 국제 문학제 비에른손 훈장, 2006년 스웨덴 시카다상, 2007년 영랑시문학상, 2014년 스트루가 시 축제에서 황금화관상을 받았다.

만인보
만인보

문학세계

〈불교신문〉의 초대 주필로 있을 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을 발표한 데 이어,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눈길〉 등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 〈피안감성〉(1960)을 펴낸 후, 수필집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1968)를 내면서 '성(聖) 고은 에세이집'이란 부제를 붙여 사회적 선풍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누이·폐결핵' 같은 단어를 자주 써서 인생의 허무를 읊었다. 1970년 짧은 시집 〈세노야〉를 펴낸 뒤, 한때 번역에 힘쓰다가 1974년에 발표한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기점으로 사회비판의식이 강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8년에 발표한 장시 〈갯비나리〉는 1970년대의 참여시를 민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집으로 〈조국의 별〉(1984)·〈전원시편〉(1987)·〈아침이슬〉(1990)·〈해금강〉(1991)을 비롯해, 대하시 〈만인보 萬人譜〉(1986년부터 발간중)·〈백두산〉(1987년부터 발간중) 등을 펴냈다. 소설집으로 〈피안앵 彼岸櫻〉(1962)·〈일식〉(1974)·〈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1980)·〈소설 화엄경〉(1991) 등을 펴냈다.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