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자

계미자

다른 표기 언어 癸未字 동의어 정해자, 正解者

요약 계미자라는 명칭은 1403년의 간지에서 유래되었고 활자의 모양은 구양순체를 본떴으며 재료는 동철이다. 활자를 만든 이유는 중국 책이 들어오기 어렵다는 점과, 목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태종은 1403년 주자소를 두고, 2월에 주조를 시작하여 수십만 자를 만들었다. 이 활자로 찍은 최초의 책은 1406년의 〈도은선생문집〉으로 추정된다. 년도가 분명한 최초의 책은 〈십일가주손자〉인데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1412년 신득재가 만든 종이로 〈십칠사〉를 찍게 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때 찍었던 것으로 보이는 〈십칠사찬고금통요〉는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예기천견록〉은 계미자의 복각본에 의한 책이다.

계미자라는 명칭은 이 활자를 만든 해인 1403년의 간지가 계미인데서 계미자라고 불렀다고 김종직(金宗直)의 〈신주자발 新鑄字跋〉에서 말하고 있다.

한편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慵齋叢話〉에서는 정해자(丁亥字)라 부른다고 하였다. 이 활자의 글자꼴[字體]은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본뜬 모가 뾰죽한 글씨꼴로 되어 있다. 그 글씨본[字本]은 경연청(經筵廳)에 소장하고 있던 고주(古注) 〈시 詩〉·〈서 書〉·〈좌씨전 左氏傳〉이라고 권근(權近)이 쓴 소위 〈계미자 주자발 癸未字鑄字跋〉에서 밝히고 있다.

이 활자를 만든 재료는 구리와 무쇠, 즉 동철(銅鐵)이라고 〈태종실록 太宗實錄〉에 분명하게 적혀져 있다.

이 활자를 만들게 된 동기는 우리나라가 바다 건너에 있어 중국의 책이 드물게 오고, 목판으로 새긴 것은 쉽게 이그러지며, 또 세상의 책을 다 찍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권근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태종은 1403년 2월 13일 경신(庚申)에 주자소(鑄字所)를 새로 두고, 내부(內府)에 가지고 있던 동철을 많이 내서, 또 여러 신하들에게도 동철을 내게 한 다음 그해 2월 19일부터 주조하기 시작하여 여러 달만에 수십만 자를 만들었다.

주조하는 일은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 이직(李稷),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 그리고 우대언(右代言) 이응(李膺) 등으로 감독하게 하였고, 군자감(軍資監) 강천주(姜天霔), 장흥고사(長興庫使) 김장간(金莊侃), 대언사주서(代言司注書) 유이(柳荑), 수녕부승(壽寧府丞) 김위민(金爲民), 교서저작랑(校書著作郞) 박윤영(朴允英) 등으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 활자로 찍은 최초의 책은 1406년 10월에 찍은 이숭인(李崇仁)의 유고인 〈도은선생문집 陶隱先生文集〉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남아 있는 〈도은선생시집 陶隱先生詩集〉(김완섭 소장본 3권 1책, 조병순 소장본 1권 1책)은 그 앞부분으로 짐작된다. 이 책은 모두 작은 활자로 찍혀 있는데 이와 같은 책으로는 〈신간류편력거삼장문선대책 新刊類編歷擧三場文選對策〉(임종문·조병순 소장본)도 있다.

찍어낸 날짜가 분명한 최초의 책은 〈십일가주손자 十一家註孫子〉로 책 끝의 인출기(印出記)에 "永樂七年四月日印"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본은 나타나지 않고 나중에 활자로 찍은 책만이 남아 있다.

1412년 7월 9일에 요나라 사람 신득재(申得財)가 만든 종이로 〈십칠사 十七史〉를 찍게 했다는 기록이 〈태종실록〉에 보이는데, 이때 찍었던 것으로 보이는 〈십칠사찬고금통요 十七史纂古今通要〉(구 후지다[藤田亮作] 소장본을 쪼개어 지금은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가 있다.

그밖의 책으로는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東萊先生校正北史詳節〉(구 송석하 소장본을 쪼개어 지금은 전성우·통문관·조병순 소장), 〈송조표전총류 宋朝表牋總類〉(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 〈찬도호주주례 纂圖互註周禮〉(일본국립국회도서관 소장), 〈음주전문춘추괄례시말좌전구독직해 音註全文春秋括例始末左傳句讀直解〉(항심 소장) 등이 남아 있다.

계미자의 복각본(覆刻本)에 의해서 〈예기천견록 禮記淺見錄〉도 계미자로 찍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실록〉의 기사에 따르면, 1412년 4월에 〈경제육전원집상절 經濟六典元集詳節〉 3권과 그 〈속집상절 續集詳節〉 3권을, 1416년 3월에 〈승선직지록 乘船直指錄〉을, 4월에 〈동국약운 東國略韻〉을 찍게 했는데, 이 책들 역시 계미자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견된 〈중신교정입주부음통감외기 重新校正入註附音通鑑外記〉는 1422년 중국에서 간행한 책을 우리나라에서 활자로 찍은 것으로 서문은 계미자, 본문은 경자자(庚子字)로 찍었다(윤형두 소장본, 서문이 없는 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