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관

겸관

다른 표기 언어 兼官

요약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본래의 관직을 가지고 겸임하게 한 관직.

겸함(兼銜)이라고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재상들이 군사책임자를 겸하는 사례가 많았다. 신라의 병부령(兵府令)이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을 겸하거나, 병부시랑이 학사를 겸하는 사례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당(唐)·송(宋)의 제도가 수용되면서 겸직제가 폭넓게 시행되었다. 삼사(三司)·육부, 한림원의 판사(判事)·지부사(知部事) 등은 모두 재신(宰臣)이 겸했고, 학사 등도 타관이 겸직했다. 비상설기관의 경우 역시 겸관이 많았다.

조선 초기에도 고려말의 관제를 이어받아 겸관이 많았다. 사헌부의 감찰, 통례문의 겸판서, 관상감 등의 겸승(兼丞)·겸주부, 성균관의 지사(知事)·동지사·겸학정(兼學正) 등 많은 종류가 있었다. 성종때 〈경국대전〉 체제가 정비되면서 겸직제도도 정비되었다.

동반경직의 겸관은 24개 관서 200여 직, 서반경직의 겸관은 5개 관서 34직, 동반외직의 겸관은 3개 도(道) 6직, 서반외직의 겸관은 8개 도(道) 400여 직이 있었다. 동반경직은 의정·판서·승지 등 고위관료에 의해서 고위 120여 직이 겸직되고 있는데, 이는 조선 관료제의 권력집중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반의 경우도 오위도총부·오위·훈련원 등 대부분이 겸직이었다.

외직의 경우 동반직은 거의 실직이었으나, 서반직인 각급 군사지휘관은 총 500여 직 중 400여 직이 관찰사, 수령들이 겸하는 겸관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서반직을 중심으로 겸직제에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속대전〉을 통해서 법제화되는데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겸보덕(兼輔德), 규장각의 겸교리, 각 군영의 겸파총(兼把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성균관의 좨주(祭酒)·사업(司業),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찬선(贊善) 등 산림(山林) 전문직과 성균관의 대사성, 홍문관의 전한, 규장각의 직각(直閣) 등은 실관 혹은 겸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특히 비변사·선혜청·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에 도제조·제조 등의 관직이 설치되어 동반경직의 겸직이 늘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권력의 집중도가 강화되고 있음과 정치·군사의 밀착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서반경직 역시 오위영의 설치로 겸관이 150여 직 늘었는데, 이는 대부분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수령의 겸관이었다. 겸관제도는 법전에 나타나 있는 것을 넘어서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행정업무의 능률, 국가예산의 절감, 유능한 인재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과도한 권력의 집중을 보장하는 장치로 작용하여 폐단을 낳기도 했다.→ 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