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을 두고 일어난 분쟁은 무엇인가?

체첸을 두고 일어난 분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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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래 체첸의 분리주의자들은 하와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했다.

체첸의 인구 대부분은 체첸인이었으나, 일부 잉구시인과 러시아인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체첸과 잉구시인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도였던 반면에 러시아인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를 따름으로써 구조적 마찰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소련이 무너지자, 혼란기를 틈타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그 결과 마찰이 심해지면서, 1991년 두다예프(Dzhokhar Dudayev, 1944~1996)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1992년 체첸과 잉구시는 두 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을 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석유와 제조업의 중심지로서 러시아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1994년, 체첸의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자, 그해 12월 러시아는 진압군을 투입해 대대적인 반군 소탕 작전을 감행, 그로즈니를 점령하면서 제1차 체첸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1996년 8월 체첸의 게릴라군이 도시 내에 병원을 점거하고, 수천 명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면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두다예프가 죽고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사태가 진정된 듯 보였다.

1997년 그들은 평화 조약을 맺고, 제1차 체첸 사태는 끝났지만 체첸을 독립국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1999년 체첸 반군들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두고 4주에 걸쳐 다섯 번의 폭탄 테러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300여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모든 비난의 화살은 체첸군에 쏠렸다. 러시아는 다시 전쟁에 돌입하였고, 제2차 체첸 사태가 발생했다. 2000년 2월에는 러시아군이 체첸을 점령했고 사태는 계속해서 악화되었다.

체첸을 둘러싼 분쟁은 러시아 전역에 걸쳐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2002년과 2004년에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는 260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2002년 10월에는 체첸군이 모스크바 극장에서 700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인질극은 이틀간의 공방 끝에 러시아 특수 부대가 돌입해 41명의 체첸 병사와 129명의 인질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이 났다. 2004년 8월에는 두 대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충돌로 9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푸틴 대통령은 이를 테러 행위로 간주했다. 또 2004년 9월 1일, 32명의 무장 군인들이 북오세티야의 베슬란에 있는 초등학교를 점거하면서 1200명의 어린이들을 인질로 잡고 48시간 동안 대치했으며, 러시아 특수 부대가 다시 한 번 투입되었으나 335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체첸을 둘러싼 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불안정한 상태다. 러시아와 체첸 사이에서 벌어지는 테러, 인질극, 암살과 같은 극단적인 폭력 사태는 오늘날 국제 사회의 근심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