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쯤 끼어 있을까

나는 어디쯤 끼어 있을까

곽덕준 ‘10개의 계량기’와 뒤샹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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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울 더미에 끼어 있는 것 같은···
  2. 정말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을까?
  3. 뒤샹의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저울 더미에 끼어 있는 것 같은···

미술이나 음악을 비롯한 예술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감흥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도 그렇지만 미술 작품을 볼 때면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언가 ‘반성적인’ 고민의 동기를 제공해 주곤 한다. 물론 하나의 예술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특정한 교감이 형성된다.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는 일종의 설치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기지만 어느 새 작품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작품은 10개의 계량기가 피라미드형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다. 작은 구멍가게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울이다. 당연히 직접 조각을 하거나 만든 것은 아니다. 시중에서 파는 저울을 사다가 쌓아 놓았을 것이다. 위에 놓인 저울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울의 빨간 눈금이 무겁게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10개의 계량기
10개의 계량기

곽덕준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통치가 점점 더 극심해져 가던 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토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교토를 작품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일본, 그것도 천황이 있어서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천황의 궁 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 큰 절을 올리는 교토에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한국인 작가로서 작품 활동은 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분열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곽덕준은 전 생애에 걸쳐 저울 더미 한구석에 끼어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기무라 히토야스라는 미술 평론가는 곽덕준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서의, 그렇다고 한국인으로서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던 곽덕준은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일본에서 태어나 교토에서 살고 있는 이렇게 확실한 존재가 어느 쪽에서도 이질적인 소속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러한 운명에 말려들게 한 사회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사회란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존재인가? 이러한 의문에 과연 누가 명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나 자신이 해답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결의가 곽덕준 작품의 원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을까?

차가운 기계의 조합 같기만 한 〈10개의 계량기〉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을 응시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에고에 빠져든다. 쌓여 있는 저울 더미 어딘가에 끼어 있는 느낌이 든다. 지금 이 저울의 어디쯤에 끼어 있는 것일까? 맨 아래일까, 중간쯤일까? 쌓아 놓은 저울에 감정이입이 되는 현상이 우스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일하는 기계처럼 살아온 날들이 많았으니 한가한 감정놀음으로 비칠 수도 있다.

흔히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유의지’를 꼽곤 한다. 스스로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약속이나 다짐을 한다. 유년 시절은 부모의 보호와 영향이 절대적이고, 아직 독립적인 자아의 형성도 부족할 시기이니 자유의지라는 것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청소년 시기에는 부모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른바 사춘기는 막 형성되는 자유의지와 부모의 관성적인 간섭이 충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즈음 빨리 성인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욕구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직장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혹은 아이를 둔 부모가 되거나 심지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서도 ‘정말 내 의지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계획을 하고 스스로의 기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자유의지보다는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의무감이 사고와 행위의 동기를 대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스스로의 기쁨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떠밀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느낌이 지배적이리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저울 눈금은 자유의지에서 반쯤은 떠나 있다.

물론 그런 의무감을 전적으로 거북한 이물질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내부에서 동력이 100% 나와야 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다. 물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물이 흐를 수 있는 조건으로서 지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이 외적으로 작용하고 여기에 물 자체의 속성이 결합될 때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의 삶을 거의 의무감만으로 살아간다고 느낄 때나 자기 안에 자신의 흔적이 거의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정신적인 기아 상태에 빠진다. 아니 그러한 정신적 공복감을 느껴야만 자유의지의 싹은 다시 고개를 내밀 가능성이나마 찾을 수 있다.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는 그렇게 우리의 갈증을 자극한다.

뒤샹의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곽덕준의 작품을 보면서 “저게 무슨 미술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기성 제품을 사다가 쌓아 놓았을 뿐인데, 창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저것이 무슨 예술일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미 20세기 초반에도 미술계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1917년, 세상이 러시아혁명으로 발칵 뒤집혔다면 미술계는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이라는 작품으로 발칵 뒤집혔다.

샘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남성용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등장했다. 말 그대로 그냥 변기였다. 하단부에 사인 몇 글자를 적어 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변형도 찾아볼 수 없는 변기 그 자체이다. 그나마 ‘R MUTT’라고 적힌 사인은 뉴욕 변기 제조업자인 리처드 머튼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뭔가 아름다움을 만끽하려고 찾은 전시장에 등장한 변기를 보고 제일 먼저 경악한 것은 주최 측이었다. 어느 공중변소에서나 볼 수 있는 남성용 변기를 떼어다 ‘샘’이란 제목으로 올려놓았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전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는데 결국 주최 측에 의해 〈샘〉은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 칸막이 뒤에 폐기되었다. 한마디로 변기 취급을 받았다. 주최 측은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뒤샹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6달러라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는다. 〈샘〉은 아무런 거론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고 전시에서 제외되었다.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혹자는 그것이 단지 화장실 용구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화장실 용구 상점의 진열장에서 볼 수 있는 부품일 따름이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냈다. 화장실 용구 설비품을 모사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이 만들어 낸 유일한 예술품은 바로 이 화장실 용구들과 교량들뿐이기 때문이다.

〈샘〉에게서 당장 느낄 수 있는 감흥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공개장’의 몇 가지 근거는 공감이 간다. 먼저 변기를 부도덕하고 상스러운 무엇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미술은 아름다운 것을 묘사해야 한다는 통념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른바 상식적인 미의 기준으로 본다면야 가슴과 엉덩이가 기형적으로 크게 묘사되어 있는 구석기 시대의 여인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풍요와 다산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표상이었다. 어느 누가 이 비너스를 미술에서 제외시킬 수 있겠는가? 그만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자체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 수 없는 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설사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예술의 표현 대상에서 배제될 필요는 전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전쟁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변기보다도 몇 천 배 이상은 더럽고 추한 것이 인간의 전쟁일진데 미술의 역사에서 추앙받는 작품 중에 전쟁을 그린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자기가 직접 만들었는가의 문제도 미술의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뒤샹에 의하면 레디 메이드, 즉 기성품을 그 일상적인 환경과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게 되고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함만이 남게 된다. 즉 미(美)는 발견해야 한다는 근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주장한다. 직접 만들었지만 사물을 그대로 베낀 것과 비록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시공간에 그것을 있게 함으로써, 즉 화가가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한 것 중에 어느 것이 진정한 창작일까?

이제는 뒤샹의 〈샘〉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국에서 미술계 인사 500명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뒤샹의 〈샘〉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참고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2위,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사진이 3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4위, 마티스의 〈붉은 화실〉이 5위를 차지했다. 이미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화가들에게 예술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도 아마 뒤샹의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실 뒤샹의 〈샘〉 그 자체에서 어떤 감흥을 느끼지는 못한다. 기성품을 특정한 공간에 둠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창조될 수 있다는 발상을 제공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서의 이해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샘〉에서 어떤 실존적인 감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특수한 조건 속에서 〈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지도 모른다.

곽덕준의 〈10개의 계량기〉가 주는 감흥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난 몇 년간 접했던 조각품들 중에 이 만큼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끔 한 것은 없었다. 그냥 구멍가게에서 만날 때는 차가운 쇳덩이에 불과할 이 저울이 어우러져 그 어느 작품보다 더 창작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의미가 없어 보이던 기존의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소중한 창조 행위일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었다.

참고

곽덕준(1937년~ )
일본 교토 출생의 재일교포 2세. 1960년대부터 현대미술 분야에서 독창적인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입체, 영상,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왔다. 대표작으로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자신의 얼굴을 반씩 붙여 찍은 연작 사진 ‘대통령과 곽’ 시리즈, 만화적 기법을 도입한 회화 시리즈 〈무의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