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

휴보

HUBO

세계 최고 재난로봇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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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던 재난구조 로봇
  2. 변신하는 인간형 로봇

원자력발전소, 특히 원자로 부근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로봇도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2011년 일본의 원전 사고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보다 월등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재난대응로봇을 만들 수 없을까.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내고, 각종 밸브를 잠그고 빠져 나오는 그런 로봇 말이다. 이런 로봇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세계대회가 있다. 바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DARPA Robotics Challenge)’다. 2015년 6월 미국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 우리나라 KAIST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휴보(DRC휴보Ⅱ)가 1등을 차지했다.

휴보는 이 대회에서 차량운전, 문 열기, 냉각수 밸브 잠그기, 벽 뚫기 등 8가지 임무를 44분 28초 만에 완벽하게 수행해 8점 만점을 받았다. 미국의 IHMC로보틱스 팀도 역시 만점을 받았지만 휴보가 6분가량 빨랐다. 미국 로봇의 최고 기록은 50분 26초였다.

DRC휴보Ⅱ
DRC휴보Ⅱ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던 재난구조 로봇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출전을 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한 국내 박사과정 학생은 대회 공고를 처음 접하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로봇기술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회를 주최하는 다르파(DARPA, 미 국방성고등연구계획국)는 계획을 착착 진행해 나갔다. 우리가 연구비를 지원해 줄 테니 이런 로봇을 개발해 보라는 것이다. 2년 간 각 팀별로 적게는 매년 37만5000달러부터 많게는 18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또 연구비를 받지 못한 팀도 자율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해 많은 로봇 연구팀들이 달려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3년 12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홈스테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동차 경기장을 빌려 첫 대회가 열렸다. 당시에는 문 열기, 밸브 잠그기 등 미션을 따로 따로 수행해야 했다. 당시 우승팀은 ‘에스원’이란 로봇을 들고 나온 일본 기업 ‘샤프트’였다. 로봇개발로 유명한 일본 산업기술연구소(AIST)에서 만든 회사다. 1차 대회를 마치며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변했다. 불안한 경우도 많았지만 로봇들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던 임무를 척척 수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은 2015년 2차 대회에서 완벽한 미션 해결로 이어졌다.

이 대회의 미션은 모두 8개. 제일 먼저 차량에 태워 출발시킨 로봇이 1) 운전을 해서 사고 현장까지 들어가고, 2) 차를 정차시킨 다음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손과 발로 하차에 성공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차에서 내릴 수 있는 로봇이 없었다. 그 다음 3) 문을 열고 오염된 실내로 들어가 4) 냉각수 밸브를 잠근 다음 5) 주위에 놓아둔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내고, 6) 그날 아침에 주어지는 깜짝과제(레버 당기기, 전선 연결하기, 벽스위치 누르기 등)를 수행한 후, 7) 잔해물을 돌파해 건물을 빠져 나와서, 8)마지막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DRC휴보Ⅱ
자동차에서 내리는 DRC휴보Ⅱ

대회가 처음 기획됐을 때는 ‘로봇이 이런 일을 하는 건 10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악평까지 있었다. 그러나 불과 3년 사이 비록 제한적이지만 로봇이 사람대신 일을 해 내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간형 로봇 휴보가 처음 개발된 건 2004년. 11년 사이 휴보의 모양과 성능은 큰 폭으로 변했다. 2004년 처음 개발된 로봇 휴보는 아장아장 걷고, 두 팔을 들어 춤을 추는 정도였다. KAIST 휴보센터는 지속적으로 연구를 계속해 2009년엔 달리기가 가능한 휴보2를 개발한데 이어 2013년엔 춤추고 물건을 집어 올릴 수 있는 ‘DRC휴보’를 개발했다. 이번 대회에 나온 휴보의 정식 명칭은 ‘DRC 휴보Ⅱ’. 기존 ‘휴보’와 비교해 힘과 체구, 안정성과 운동능력이 모두 확연하게 달려졌다.

밸브를 잠그는 DRC휴보Ⅱ
밸브를 잠그는 DRC휴보Ⅱ

변신하는 인간형 로봇

재난현장에 사람대신 투입하는 재난대응로봇, 화재 현장 등에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구조로봇은 아직 현실에 등장한 바 없다. 다만 이런 로봇들은 ‘인간형’ 즉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일을 하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공장도, 아파트도, 원자력발전소도 모두 사람이 들어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장소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로봇 역시 사람처럼 생겨야 유리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휴보를 만든 과학자들 역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고 봤다. 로봇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만큼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두 손으로 일을 할 때는 인간형 로봇 형태를 취하지만, 부족한 운동능력이나 기능을 보완 할 때는 그에 적합한 로봇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로봇 휴보는 최적의 선택을 했다. 기본형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지만, 높은 계단이나 험지를 걸어 갈 때는 상체를 180도 뒤로 돌려 뒷걸음질 치면서 걸어간다. 이렇게 하면 소나 말처럼 무릎이 뒤로 구부러지는 형태로 걷게 돼 안정성이 훨씬 높아진다. 더구나 빠른 이동이 필요할 때는 자동차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정강이와 발밑에 바퀴도 달았다. 두 발로 걷다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언제든지 굴러서 이동할 수 있다.

재난 로봇의 또 다른 조건은 ‘적당한 체격’이다. 무게가 충분해야 각종 기기를 조작할 때 균형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크면 운동능력이 떨어진다. 휴보도 과거에 비해 체구를 큰 폭으로 키웠다. 2004년 이후 휴보의 키는 버전이 바뀌어도 줄곧 125cm 였지만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휴보는 168cm에 달한다. 오준호 휴보센터장은 “하체 힘이 좋아야 걸을 때 안정성이 있다고 판단해 다리에 ‘슈퍼 커패시터(대용량 축전기)’를 부착했다”면서 “전기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내보내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모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냉각장치도 개선했다.

실험실에서 로봇의 성능을 개선하고 있는 모습
실험실에서 로봇의 성능을 개선하고 있는 모습

여기에 시각정보 처리능력과 기본 구조의 안정성도 크게 높였다. DRC휴보Ⅱ의 머리에는 레이저 스캐너와 광학카메라를 달아 흐리거나 햇빛이 강한 날에도 문제없이 앞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권인소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팀이 개발한 시각처리 프로그램을 이식해 데이터를 더욱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물체를 인식할 때 로봇은 주로 레이저 스캐너를 사용하고, 사람은 로봇에 달려 있는 카메라를 이용하는데 두 개의 감지장치에 시각 차이가 발생한다”며 “이 작은 차이가 오작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소프트웨어로 보정했다”고 설명했다.

DRC휴보Ⅱ의 손도 11년 간 가다듬어 모양과 실용성을 모두 갖췄다. 2004년 개발한 구형 휴보는 사람처럼 다섯 손가락이 움직이지만 손가락이 굵고 물건을 잡는 기능은 크게 떨어진다. DRC휴보로 넘어오면서 손가락을 세 개로 바꾸는 대신 약 15kg의 물건도 감싸 쥘 수 있게 했다. 물건을 쉽게 떨어뜨리지 않도록 손끝에 아주 작은 바늘을 붙였다.

사실 휴보만 이런 개선을 이뤄낸 것은 아니다. 많은 로봇들이 대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다. 대회에 참가한 한 로봇과학자는 “이번 대회가 기술 혁명을 이끌어내고 있다”며 “원전사고, 공장 화학가스 누출사고 등의 현장에서 실제로 로봇을 투입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이 사람을 구하는 세상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참고

・ ※ 본 콘텐츠는 Daum 백과사전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제작하였습니다.